본문/내용
4 · 3의 역사는 다른 역사적 사실과 마찬가지로 우연적으로 일어난 사건은 아니다. 제주도의 역사와 한국의 해방전후의 역사의식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그러기에 제주의 사건은 단순한 지역적 사건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와 국제 정서를 잘 드러내 주는 사건이 된다. 특별히 4 · 3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자 할 때는 해방된 조국이 어떻게 분열의 길을 걷고 각자의 길을 가게 되었는지에 대한 역사적 내용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미군정기 3년동안 우리 민족이 가장 원했던 것은 일제 잔재를 하루바삐 청산하고, 식민지 경제구조를 개혁을 통해 변혁시키며, 우리 힘으로 자주적인 통일국가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어느 목표하나 달성될 것 같은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미군정의 경제 정책은 실패를 거듭했다. 또한 단정세력인 이승만의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와 다수의 친일파를 포함하고 있으면서도 경찰권을 진 한민당은 5 · 10단선을 통하여 정권의 장악을 기도했다.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패망은 곧 우리의 해방을 의미했지만 완전한 민족 해방은 아니었다. 미 · 소 양국의 군사적 점령이 그들에 의한 남북 지배가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물론 국내에서도 민족 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은 있었다. 당시 전국적으로 ‘건국 준비 위원회’(이하‘건준위’)가 결성되어 건국 사업을 벌여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제주도에서도 9월에 결성된 제주도 인민위원회가 중심이 된 건국 사업이 활기차게 진행되고 있었다. 제주도민은 스스로 치안을 유지하고 적산을 접수, 관리하면서 몰수한 군량미를 빈민에게 무상 분배하였다. 이와 함께 제주도민들이 힘을 쏟은 것은 자주 교육 운동을 통한 사상과 문화의 보급이었다. 그러나 그 해 10월 미국은 군정 실시를…
제주도에서도 9월에 결성된 제주도 인민위원회가 중심이 된 건국 사업이 활기차게 진행되고 있었다. 제주도민은 스스로 치안을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