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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균형 경제성장과 ‘유신’독재
1) 불균형 개발과 지역차별
반공과 경제개발을 명분으로 하여 등장한 ‘5·16 군사정부’는 1960년대에는 경공업을 중심으로 하여 제조업과 석탄 등의 기간산업을 육성하고 1970년대에 이르러서는 중화학공업을 육성하는 한편 사회간접자본시설을 크게 확충하였다. 이 부분은 이종범·최원규 “자료 한국근현대사입문”, 혜안 1995; 김인걸 외 “한국현대사강의”, 돌베개, 1998; 김동욱 ‘한국자본주의의 모순구조와 항쟁주체’, “광주민중항쟁연구” 사계절 1990; 김진균·정근식 ‘광주5월민중항쟁의 사회경제적 배경’ “광주5월민중항쟁” 풀빛, 1990; 김덕현 ‘한국의 자본주의적 산업화와 지역불균등발전’ “지역불균형연구” 한울, 1994 참조. 각주 생략.
그간에 베트남전쟁 특수와 중동건설경기라고 하는 외적 조건이 유리하게 작용하기도 하여 박정희 정권 하에서의 외형적 경제성장은 분명히 괄목한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무역수지의 적자폭이 확대되면서 무역의존도가 급격히 높아지고 급증하는 외자도입과 함께 원리금 상환의 부담이 가중되는 과정에서 이룩된 대외종속적 발전이었다. 국민총생산에서 무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1962년 21%에서 1972년 38.6%, 1977년 55.7%, 1980년 65.9% 이었다. 무역적자폭은 1972년 수출 162억불 수입 252억불로 90억불이었는데, 이후 수출호조로 1977년에는 수출 1004억불, 수입 1081억불로 77억불 수준으로 감소되었지만, 1980년에는 수출 1750억불 수입 2229억불로 무려 479억불로 늘어났다. 외자도입액은 1965년 2.3억불, 1970년 23.5억불, 1975년 91.2억불, 1978년 157.2억불, 1980년 283.7억불로 늘어났다. 1979-80년 2년의 외자도입액은 지난 20년 도입액의 50% 수준에 이르렀다.
또한 이 과정은 대기업을 중심으로 국가 주도로 진행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