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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음악학의 정립과 음악사학의 주류형성은 그 당시의 낭만주의 사상과 밀접히 관계된다. 낭만주의의 중요한 특색의 하나는 그들이 속해 있는 향토, 민족, 조국에 대한 애착, 그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다. 중세음악의 재발견, 빈터펠트(Karl von Winterfeld)에 의한 `죠반니 가브리엘`, `독일 프로테스탄트 교회음악`, 옷토야안(Otto Jahn)의 유명한 `모오짜르트`등의 음악사적 저작은 낭만주의 음악사상의 소산 가운데의 몇 개의 예라고 할 수 있다.
일반학문의 경우도 그러하지만 음악학의 발달은 대학교육에서 강좌를 설치한다거나 전공학과를 둔다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처음 음악학의 강좌는 1826년 본 대학의 하인리히 브라이덴시타인(Heinrich Breidenstein, 법률학자), 그리고 1830년 베를린 대학의 아돌프 베른하르트 마르크스(Adolf Bernhard Marx, 언어학), 1856년 비인 대학의 에두아르트 한슬릭(Eduard Hanslick), 1869년 프라하 대학의 아우구스트 암브로스(August Ambros)가 음악학의 강좌를 담당하게 되었고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독일 지역의 거의 모든 대학에서 사회학, 역사학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해서 독립학과로서의 음악학과가 설치되었다. 라틴어 문화권에 있어서는 음악학에 대한 인식과 그 성과에 있어서 그다지 뛰어나 있지 못하다는 것이 아마 사실일 것이다. 음악학의 학문적인 위치를 굳히게 한 초기의 대표적 음악학자로서는 후고 리이만(Hugo Riemann, 1849~1919), 귀도 아들러(Guido Adier, 1855~1941), 에드문트 크레치머(Edmund Kretschm
er, 1848~1924)를 손꼽는 것이 보통이다.
음악학이 처음 자리를 잡게 되었을 무렵, 음악가측의 반응은 반드시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작곡가도 연주가도 아닌 사람이 음악에 대해서 논하고 글을 쓰는데 대해서 일종의 불신을 나타내었다는 것은 기억해 둘 만한 일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