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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전에 유심론사학을 대표하는 이는 박은식·신채호·이상룡·김교헌·정인보 등이었다. 그들 가운데 해방 후에 생존한 이는 정인보뿐이었다. 정인보는 해방 후에 『조선사연구』를 간행하지만 그것은 1935. 1. 1~36. 8. 28일에 동아일보에 연재한 것이었다. 그 외에 그는 특별한 연구논저를 남기지 않고 국학대학 사업에 열중하다가 정부수립 후에는 감찰위원장을 맡아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가 보니 서재를 지킬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보면 유심론사학은 새 인물의 연구물이 나오지 않는 한 적어도 강단사학에서는 모습이 사라졌다고 말할 수 있다. 하기는 유심론사학의 가치가 무엇보다도 식민지시기 독립운동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데에 있었으므로 해방된 마당에 약화되었을 가능성이 있기는 했다.
그런데 해방 전에 문화사학을 추구하던 장도빈이 해방 후의 저술에서 유심론적 경향을 나타내고 있어 주목된다. 유심론사학이나 문화사학이 모두 관념사학이기 때문에 서로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지만, 장도빈은 20년대에 문화주의를 제창하고 있었고 그의 저술을 보면 문화사학의 성격이 완연하였다. 그런데 해방 후에 단국대학이나 육군사관학교의 교재로 사용한듯한 『조선사상사』(1945)와 『국사강의』(1947)나, 만년의 『한국의 혼』(1957)까지 그 무렵의 논저를 보면 유심론적 ‘정신’이나 ‘혼’이 무척 강조되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1937년부터 고향인 평안도 중화에서 은거생활하는 가운데 겪어야 했던 일제 말기의 극단적 상황 속에서 요구된 정신 자세의 반영이 아니었던가 한다. 그리고 6·25를 전후한 혼란기에도 역시 그러한 정신 자세는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2. 문화사학의 발전과 신민족주의의 대두
식민지시기의 문화사학은 황의돈·장도빈·안확·권덕규·최남선 등에 의해서 개발되어(초기문화사학) 30년대에 안재홍·문일평·최익한·손진태 등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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