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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부지의 사상은 그의 생전에는 물론 사후 200년 가까이나 몇몇 경전의 주석서를 제외하고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호남의 궁벽한 산골에서 저술활동만 하고 문하생 또한 많이 두지 않은 때문이기도 하지만, 화이관에 입각한 그의 이민족 지배에 대한 거부가 청조의 사상통제에 저촉된 때문이다. 학교와 과거를 지향하는 신사층에게 왕부지의 독특한 사상이 원천봉쇄된 것은 물론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사상은 청조의 힘이 서서히 기울기 시작한 19세기 중후반에 이르러서야 동향인 호남의 지식인들에게 당면한 정치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상적 기반으로서 나타난다.
증국번, 증국전 형제는 태평천국의 수도 천경(남경)을 함락시킨 다음해인 1864년에 왕부지의 저술간행에 착수하여 그 이듬해 총 56종 288권의 금릉판 『선산유서』를 발간하였다. 그 이전에도 왕부지의 저술 중 일부가 몇 차례 간행되었지만 널리 유포되지 못하고 소실되었다. 그렇지만 금릉판 『선산유서』는 태평천국군은 진압한 증국번 형제의 명망에 힘입어 세가들과 각 서원들이 다투어 구비했을 정도로 널리 배포되었다. 이를 계기로 왕부지의 사상은 당시의 학인들에게 크게 전파되었다.
증국번은 ‘왕선산유서서’에서 천하의 쟁난을 그치게 하는 경세사상의 기본개념으로 공자이래의 인과 예를 들고 왕부지의 『장자정몽주』와 『예기장구』에 보이는 인과 예의 중시가 세난을 미연에 막을 수 있다고 논하였다. 지배체제의 주체를 신사계층에 두고 풍속에 대한 그들의 적극적인 계도와 사회참여를 요구하는 증국번의 경세중시는 건릉. 가경조 이래 청중기 사조의 주류를 이루어 왔던 고증중심의 한학에 대한 비판과 맥락을 같이한다. 의리를 중시하는 증국번의 정주학적 경향은 그의 동향 선배인 당감의 영향을 받은 것인데, 당감은 송에서 청에 이르는 정주학의 도통을 계승하여 호남의 후학에 연결시켜 준 인물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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