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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인(공인)으로서 김만중은 당파적 이해만을 추구한다는 거듭된 비난에도 불구하고 군자의 당과 소인의 당은 다름을 주장하며, 일정한 정치적 입장을 관철시키고자 노력하였다. 학문태도와 관련하여 39세에 있었던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다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만중은 윤후가 경연에서 “논어주(론어주)는 반드시 많이 읽을 것이 없다”고 한 것과 “글을 읽을 때에는 이름 부르기를 꺼릴 것이 없으니, 대성(대성)의 이름도 마땅히 꺼릴 것이 없다”고 한 것에 대해 맹렬히 비난하였다. 앞의 문제에 대해서는 논어주는 현자의 말이니 가볍게 여길 수 없고, 또 주를 읽지 않으면 전하는 뜻을 알기 어렵다는 입장을 피력한다. 특히 “송나라 명나라 이래로 모두 집주(집주)를 숭상하였고 우리나라는 더욱 주자를 존중하였다”는 것을 강조하였다. 두번째 문제에 대해서는 대성의 이름은 려리(려리)의 아낙네나 어린이도 마땅히 꺼려야 할 줄을 아는데, 법정에서 꺼리지 않고 읽는다면 성인을 업신여기는 것이 된다고 반박한다.
김만중은 이 일로 말미암아 미세한 일을 빌미삼아 두 어진 신하인 윤후, 허목을 모함했다하여 파직당한다. 이 일화는 당시의 극도로 분열되었던 정치적 상황을 감안한다하더라도 김만중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즉, 김만중은 주자학에 경직되어 있었던 대부분의 지식인에 비한다면 유연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기본적인 지향은 엄연히 주자학의 범위 내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서포만필을 중심 자료로 하여 정치적 입장을 벗어난 김만중 개인의 모습을 성찰하면, 그의 학문적 입지는 당대 학계의 경직된 분위기와는 선명하게 대비된다. 이는 김만중의 학문 방법론을 고찰할 수 있는 주요 자료인 서포만필이 당대 지식인 사이에서 받은 평가에서도 잘 드러난다.
참고문헌
김만중, 고전문학선1 서포김만중 소설집, 해누리, 1994.
김만중, 서포만필, 일지사, 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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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 김만중 연구, 새문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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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국문학 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