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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치산은 김일성을 추월하여 권력의 득세를 하려하지 않았다. 대신 김일성을 발전시켜 그의 후광을 얻으려 하였다. 또한 그들은 정치성이 약한 집단으로 대신 군인의 성격이 강했다. 남한의 5.16 군사정권이후 빨치산의 위치 또한 상대적으로 중요해진다.
네째 완성단계의 카리스마에서 김일성은 빨치산 즉 동지들의 숙청을 단행한다.
60년대 후반 경제정책의 실패로 남한에게 경제력이 떨어지고 무장공비의 투입이 실패로 돌아가자 국제여론이 흉폭해지고, 오히려 남한에 반공사상만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게되자 김일성은 빨치산을 희생양으로 쓸수밖에 없었다. 이전과는 다르게 모두 비공개적으로 빨치산을 숙청한후 김일성은 자신의 우상화를 거침없이 펼쳐나간다. 65년 이후 우상화가 빠른 속도로 진척되어, 66년에는 김일성의 생일을 국경일로 정하고, 만경대 꾸미기등 온갖 우상화 작업에 열을 올렸다. 또한 수령이라는 칭호도 이시기에 붙여진다. 이렇게 김일성은 자신의 카리스마를 단계적으로 펼쳐 독제정권을 수립하고, 또한 우상화에 확고한 발판을 마련한다.
이로써 김일성은 혁명 제2세대를 부상시키며 1970년대를 세대교체의시기로 맞이한다. 빨치산의 세력을 잠재운 김일성은 이제 엄청난 그의 권력을 친족에게 나누어 주고 있었던 것이다.
70년대 이후 중국과 미국의 실리외교와 그로인한 냉전체제의 붕괴는 김일성의 입장에선 그다지 반가운 것이 못되었다. 소련에선 스탈린의 격하운동이 강화되고, 중공에서도 모택동의 격하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북한에서 절대적인 수령의 자리를 차지한 김일성은 사후에 대한 두려움이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