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2) 1930년대 후반 민족주의우파의 친일화 경향
1930년대 후반 이후, 특히 중일전쟁 이후 민족주의 세력 내부에서 특히 우파는 점차 친일화의 경향을 띠어가게 된다. 그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된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여기서는 친일파 그 자체에 대하여 살펴보는 것으로부터 이 문제에 접근하여 보자.
1910년 이후 일제의 식민지조선 지배정책의 기조는 `일선융화(日鮮融和)‘ `내선일체(內鮮一體)‘ 등으로 표현되는 `동화주의(同化主義)‘였다고 할 수 있다. 친일파란 바로 이러한 `동화주의‘정책에 추종하면서 일제의 식민지지배에 협조한 반민족적 행위자들을 일컫는다. 이러한 친일파는 이미 1905년 이른바 `보호조약‘ 체결 당시부터 등장하기 시작하여 정권 내의 이완용일파, 일진회의 송병준·이용구세력을 대표적인 친일세력으로 들 수 있다. 1910년대의 일제의 무단정치는 이러한 친일세력을 필요로 하지 않는 억압정치였기 때문에 1910년대에는 이렇다할 친일세력이 없었다. 그러나 1919년 3·1운동 이후 친일세력의 존재가 식민지 지배에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된 총독부측에서는 친일세력의 본격육성에 나서게 된다. 1920년대의 직업적 친일분자로서는 국민협회의 민원식일파, 조선소작인상조회의 송병준일파, 유민회·민우회의 박영효일파 , 노동상애회의 박춘금일파, 그리고 이들 세력의 연합체인 각파유지연맹 등을 들 수 있으며, 그밖에 친일지주·예속자본가들을 들 수 있다.
1930년대 특히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일제는 조선의 인적·물적 자원을 전쟁에 본격 동원할 방침을 세우고, 이를 위해 전제조건으로서 조선민중의 황민화정책을 수행하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내선일체‘의 구호 아래 37년 각면에 신사(神社)를 설치하고 황국신민의 서사를 제창할 것을 강요하였으며, 38년에는 지원병제도의 이름하에 조선인 청년들을 전쟁터로 끌고 가지 시작하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