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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플레하노프의 양립론을 제대로 이해 하려면 자유는 필연에 대한 인식이라는 명제의 의미를 충분히 파악하지 않으면 안된다. 플레하노프의 모든 주장은 이 명제에 매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명제의 정당성을 검토해보기 전에 먼저 자유와 필연의 양립은 심리학적으로도 가능하다는 그의 주장부터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1) 자유와 필연의 심리학적 양립가능성
사람들은 의지자유를 부정하는 모든 종류의 결정론은 결국에는 숙명론이 되어버린다고 생각한다. 칼빈주의 예정론에 대해서 가해진 중대한 비판중에 하나는 `예정교리는 노력하려는 인간의 모든 동기를 낙심시킨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플레하노프는 말한다.
랑송(Lanson)이 자유의지에 대한 모든 부인은 숙명론에로 귀착된다고 생각했을 때 그는 틀렸다. ……실로 역사는 숙명론조차도 활기있는 실천적 행위를 언제나 방해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와는 반대로 어떤 시대에는 숙명론이 그러한 행위를 위해서 심리학적으로 필요한 기초였었다. ……우리가 어떤 일련의 사건의 불가피성을 확신하자마자 우리는 이러한 사건을 일으키거나 사건에 거역할 심리적 가능성을 상실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그러나 숙명론적인 사고가 심리학적으로 우리의 의지를 강화시키기도 하지만 약화시키기도 하는 수많은 예들도 있다. 사람들은 자기확신을 강화시키기 위해, 자기가 하는 일을 역사적 필연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 일을 하는 것은 나의 운명이다`고 누군가가 말했다고 하자. 이 말은 그가 결정론적 세계관의 소유자임을 말하는 것인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말은 그가 흔들리는 자기 의지를 한 곳에 묶어두기 위해 자신의 결의를 단단히 하는 것이거나 확고한 자기의지를 표현한 말이거나 줄 중에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