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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사에서 근대화의 맹아는 상업자본이 축적 되어가는 19세기 후반이지만 자생력에 의한 자본주의는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하고 식민지화로 들어서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업화 과정 속의 서양 여성들이 직면한 보편적인 문제와 한국의 지리, 종교, 역사적 조건이 서양과 다름에 따른 한국 여성의 특수한 문제를 아울러 비교해 본다.
1) 참정권 운동
한국 여성운동에서 내재적 역량을 강조한 주장은 실학사상에서 그 원류를 찾는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사회적 여건의 미성숙으로 실학사상이 여성평등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1894 동학운동으로 집결된 동학동민전쟁에서 ‘과부의 제가 허용’이라는 노비제 뿐 아니라 여성평등의 문제가 구체적으로 제기 되었다.
그 후 여성문제의 제기는 봉건적인 결혼제도 혁파와, 여성교육으로 시작되었고, 식민지로 전락하게된 후에는 일본제국의 강압 무단 통치로 인해 순수 여성운동은 명맥을 잇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식민지의 억압으로부터 자유와 독립을 위해 만세운동에 참여하거나 3·1운동 직후 대학애국부인회를 위시한 여성단체들이 발족되면서 상해 임시정부에 독립자금과 군자금을 송금하는 등 한국 근대 여성운동은 국권 회복을 휘한 반제국주의 항일운동으로 이어졌다.
1922년 기독교계 여성이 주도한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는 여성 계몽운동에 주력하였다. 그리고 사회주의 계열의 여성단체인 조선여성동우회가 창설되었다. 신간회의 탄생을 계기로 기독교 여성단체와 사회주의 계열의 여성단체가 통합한 민족 유일당으로써 근우회가 1927년에 발족하였는데, 전국적 지부를 통하여 근로 여성의 파업을 지지하고 식민지 교육을 반대하여 여학생 동맹휴학에도 연대를 갖는 등 여성운동 절정기를 이루었다.
그러나 신간회의 해체로 항일 여성운동은 지하로 들어가 버리고, 여성 노동운동이 대신 맥을 잇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