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설명
안서의 창작시는 시인 자신의 말에 따르면, [해파리의 노래] 시대, [안서시집] 시대, [안서시초]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특히 ‘해파리의 노...
본문/내용
안서의 창작시는 시인 자신의 말에 따르면, [해파리의 노래] 시대, [안서시집] 시대, [안서시초] 시대로 구분할 수 있다. 특히 ‘해파리의 노래 시대’와 ‘안서시집 시대’는 시풍과 표현법에 있어서 각기 전기와 후기를 대표하는 기준이 되며 그 대부분이 정형시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전기가 서구시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들인 흔적이 있다면 후기는 시론의 변화와 함께 전통 민요조의 율격을 취하고 있다. 안서는 자신의 창작 시론인 [시형의 음률과 호흡]에서 시인 각자에 맞는 자유 시형을 주장한 바 있는데 그것은 그가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던 한국 민족시로의 복귀를 위한 이론적 고찰의 일부하고 할 수 있다. <박노균, [안서 김억 연구](서울대현대문학연구 제41집, 1982), 권영민, [한국근대문인대사전](아세아문화사, 1990), P 230 참조>
그의 문학사적 의의는 전기와 후기에 추구한 시론과 시 세계가 다른 것처럼 전·후기를 기준으로 크게 두 가지로 나누에진다.
우선 그의 초기 문학 활동이 한국 문학사에 끼친 영향은 주로 해외 문학의 소개와 보급의 측면에서 찾아진다. 특히 1910년대 후반부터 활발해진 프랑스 상징파의 시와 타고르, 뚜르게네프 등의 번역, 소개와 한국 근대 문학의 형성 과정에서 남긴 그의 공적은 매우 큰 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1921년 <광익서관>에서 간행된 우리 나라 최초의 역시집인 [오뇌(오뇌)의 무도(무도)]가 <폐허> 및 <백조> 동인의 초기 시에 미친 영향은 더욱 주목된다. 이 점은 그가 한국 문학사 초창기에 한 역할이 주로 외국 문학의 전달자에 위치에 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