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한 예를 들어서 상술한 바를 분명히 하면 여러분은 모두 곧 이해하리라 생각된다. 여러분이 어떤 어려운 낱말을 보았을 때 그 의미를 알고 싶으면, 여러분은 사전을 찾아볼 것이다. 그 낱말의 정의는 여러 가지 술어로 되어 있다. 여러분이 그 술어를 모르기라도 한다면 여러분은 또 그 술어를 찾아본다. 그러나 이러한 절차가 무한히 계속될 수는 없다. 마침내 여러분은 사전에서는 더 이상 그 설명을 찾아볼 수 없는 아주 단순한 술어에 도달할 것이다. 이런 술어들은 어떠한 것인가? 이런 술어들은 더 이상 정의될 수 없는 술어들이다. 여러분들은 그런 술어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예컨대 내가 전등갓이 노랗다고 말하니까, 여러분이 나에게 내가 노랗다는 말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기술하라고 요구했다고 하자―나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여러분에게 어떤 색깔을 보여주며, 이것이 노랑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문장이나 단어로써 그것을 여러분에게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
우리의 정의는 모두 어떤 례증(예증), 어떤 활동으로 끝나지 않으면 않된다. 색깔을 가리키는 어떤 말의 의미에 그 색깔 자체를 보여줌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떤 정신적 활동에 의하여 그 의미에 도달할 수 있는 말도 있을 수 있다. 색깔을 정의하기란 불가능하다. ―그것은 보여져야 한다. 어떤 말의 용법을 이해할 수 있을려면 혹종(혹종)의 반성이 필요하다.
우리는 아마 우리가 이런 말을 배운 방법을 반성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가지 가지 명제로써 의미하는 바를 우리에게 명료하게 할 반성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예를 들어, 서로 다른 장소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동시성’이란 술어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이 술어로서 실제로 연상되는 것을 찾기 위하여 우리는 그 명제를 분석해야 하며, 또 아인슈타인이 한 것처럼 서로 다른 장소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동시성이 실제로 결정되는 방법을 발견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