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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장 한말 의병운동의 민족주의
한국 민족에게는 의병의 전통이 있었다. 근대에 일제가 한국을 식민지로 강점하려 하자 한국 국민들은 그 전통 위에서 자발적으로 민군으로서의 의병을 일으켜 국권 회복을 위한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근대의 항일 의병운동은 을미의병의 단계, 을사 5조약때까지 재봉기의 단계, 을사조약 후 군대해산까지 확대기의 단계, 군대해산 후 고양기의 단계, 1909년 11월 이후 퇴조와 독립군으로의 전환 단계 등 5단계에 걸쳐 일어났다.
1단계는 을미의병의 단계로서 1895년 10월 민비시해 사건과 1876년 1월의 단발령에 분노하여 유생들이 일으킨 의병운동이었다. 을미의병운동이 일어나게 된 계기는 국모의 원수를 갚고 친일 개화 정권을 타도하려 한 것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였는데 인적 구성은 의병장은 모두 위정척사파 유생이었고 병사는 유생들과 농민들이었다. 을미의병의지도 이념은 위정척사사상으로서 소중화 의식, 고유 의관의 보전 등을 주장했다. 갑오경장 개화파 정부는 각지의 의병을 진압하기 위해 친위대를 파견하였고 그 틈을 탄 친러파들이 아관파천을 일으켰다. 국왕의 설득으로 의병은 모두 해산하였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러일 전쟁을 도발하고 제 1차 한일 의정서를 체결한 다음 단계적으로 한국을 침략하기 시작하자 이에 대항하여 1904년 7월 전후로 의병운동이 재봉기했다. 재봉기는 허위, 이상천의 통문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2단계 의병운동의 특징은 1차 한일 의정서를 일제의 본격적인 한국 침략의 시작으로 보고 이의 파기와 일본군의 내정간섭 중지, 일본군의 철병을 주장한 것이다. 제 3단계 확대기의 의병운동은 을사 조약의 강제체…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러일 전쟁을 도발하고 제 1차 한일 의정서를 체결한 다음 단계적으로 한국을 침략하기 시작하자 이에 대항하여 1904년 7월 전후로 의병운동이 재봉기했다…
일제는 1907년 고종을 강제 양위시키고 정미 7조약을 강제 체결하였으며 대한제국의 군대를 해산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