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우리는 위에서 [성학십도]에서 차지하는 [태극도]·[서명도]의 의미를 고찰함으로써 퇴계심학이 하나의 원리에 의한 연역적 세계관을 전제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주렴계와 장횡거는 규칙적이고도 일관된 논리로 세계를 설명하였으나 그 논리는 실제에 있어서 관념성과 선천성을 면치 못한다. 주렴계가 선천적 원리를 설정함으로써 유가철학은 인간에게 주어진 선천적 원리는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라고 하는 영원한 숙제를 안게 되었던 것이다. 유가철학의 진리는 궁극적으로는 하나로 통일되지만 일차적으로는 선천적으로 품부된 진리와 후천적으로 지각되는 진리로 나누어진다. 따라서 진리인식의 목표는 진리의 선천적인 측면과 후천적 측면이 통일되어 하나의 구체적인 삶의 원리로 되게 하는 것이다. [소학도]·[대학도]·[백록동규도]의 세 가지 도설은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진리를 알기 위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공부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태극도]·[서명도]가 인간을 포함한 우주만물에게 선천적 원리가 각기 품부되어 있음을 선언적으로 설명한 것이라면, [소학도]·[대학도]·[백록동규도]는 거기에 접근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소학도]가 제시하는 공부 방법은 인간에게 품부되어 있는 우주적 원리가 일상 생활을 통하여 스스로 발현됨을 기다려 확인하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라고 본다면, [대학도]가 제시하는 방법은 사물에 품부되어 있는 우주적 원리를 대상적 격물을 통해 인식하는 방법을 제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선 [소학도]는 인 의 예 지라고 하는 인간의 본성이 원 형 이 정이라고 하는 우주적 원리에서 유래한다는 전제 하에, 그러한 본성은 이론적인 탐구보다는 심신의 수양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발현한다는 것을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