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상면이라는 것은 [소학]의 상면이다. 사친등을 궁구하는 것은 [대학]의 일이다. 정경임이가 말하기를, `[소학] 시에는 단지 그 섬기는 것을 익히며 그 소이연은 궁구하지 않는다. 소위 일용하지만 그 까닭은 알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대학] 때에는 인사상에 나아가서 천리를 궁구하는데 소위 상면이라는 것은 각각의 사건마다의 상면을 가리킨다`고하였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소학]은 비록 그 사를 몸소 행하는 것을 주로 하지만 이미 학이라고 한다면 먼저 알고 나서 행하여야 한다`고하였다. 주자가 오회숙에게 답서한 것을 본다면, [소학]에서 알고 행한다는 것은 천소한 것을 일컫고 [대학]에서 알고 행한다는 것은 심대한 것을 일컫는다고 하였다. 이것은 소위 백성이 일용하여도 그 까닭을 알지 못한다는 것과는 같지않다. 소위 상면이라는 것에 대한 경임의 생각이 옳은 것 같다. 그러나 어류에 말한 것을 살펴본다면, `[소학]은 어버이를 섬기는 것을 배우는 것이고 어른을 섬기는 것을 배우는 것이며 또한 바로 그 일을 이해하는 것이다. [대학]은 상면에 나아가 곡진하게 그 이치를 상세히 궁구하는 것이니, 사친하는 까닭이 무엇이며 사장하는 까닭이 무엇인 지를 궁구하는 것`이라고 하였는데 말의 뜻이 더욱 분명하다.
사계가 생각하는 [소학]과 [대학]의 차이는 사친 등과같이 구체적인 행위를 일상적으로 어떻게 하여야 하는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익히는 것이 [소학]의 주된 과제이며, [대학]에서는 사친등과 같은 행위를 해야만 되는 까닭이 무엇인 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에서 구별이 된다. 즉 사친할 때는 효로써 해야만 하고 사형할 때는 제로써 해야 한다는 것은 사의 일이며, 효와 제를 해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이인 것이다. 바로 [소학]은 사에 관한 것을 주로 하고 있으며 [대학]은 이에 관한 것을 대상으로 하여 구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주자도, `차소학지사 지지천이행지소자야---차대학지도 지지심이행지대자야`라고 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