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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를로스 마리아 (부에노스 아이레스, 1860-1949)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브라질, 스페인,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외교직을 역임한 후 (마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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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를로스 마리아 (부에노스 아이레스, 1860-1949)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브라질, 스페인,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외교직을 역임한 후 (마드리드에서 가까운)
아라바까에서 은퇴하였는데 20편의 아르헨티나 풍속 소설 시리즈를 완성하기 위해서였다. 이 시리즈는 ꡔ레온 살디바르ꡕ(1888)로 시작하여 ꡔ후다스 신부ꡕ(1929)로 끝을 맺는다. 모든 소설은 스페인에서 출판되었는데 ꡔ두 빛사이에서ꡕ(1892), ꡔ후보자ꡕ(1893), ꡔ히네사ꡕ(1894) 이 세편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출판되었고 ꡔ낄리또ꡕ(1891)는 파리에서 출판되었다.
올라비데 이 하우레기
빠블로 안또니오 호세 데 (리마, 페루, 1725-1803) 철학자, 시인이자 극작가. 리마 법원의 법관이었으나 1745년에 기금횡령의 혐의를 피하기 위해 마드리드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서 결혼을 하고 계몽정신을 보급시키는 문학 살롱을 열었다. 게다가 볼테르, 라신, 레나르의 희곡을 번역하였고 그 자신이 그의 조그만 사설 극장에서의 공연을 위해 몇몇 작품을 쓰기도 하였다. 호베야나스와 친교를 가졌다. 얼마간 스페인에서 장관을 지냈으며 시에라 모레나의 식민화 사업에 종사하였다. 1777년경에 올라비데와 그의 사상을 풍자하는 필사본이 유포되었다. (학식있는 세기. 현세기의 빛에 따라 태어나고, 교육되고, 제도화되고, 승화되고, 고양된 긴도 세레소 씨의 삶. 일견 벤또사의 후스또 베라 씨를 가리키는 것같다) 그의 후원자는 아란다의 십장으로 강등되어 1778년에 종교재판에 의해 처형되었다. (그 이유는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에 대한 그의 믿음과 종교적 상징들에 대한 불경함 때문이었다) 1780년에 프랑스로 탈출하였는데 디데로와 다른 백과사전학파들은 그를 기쁘게 맞이하였다. 그러나 1794년의 대폭동의 기간 동안에 감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