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우선 크게 두가지 예를 들고 싶은데, 너무나 협소한 주제가 아닐까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저의 짧은 지식에 기인하는 까닭에 널리 양해해 주십시오.
첫째, 페노로사의 미술의 원리에 관한 논의에 있어서 이야기하고 싶다. 이는 소설총론에서 다시 언급이 되는데, 너무나 당연하여 사람의 눈을 번거롭게 하는 것이다 라고까지 표현하여 인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두 번째 논의인 모사(현실의 모사), 치밀한 묘사가 예술을 구성하는 요건이다라는 것을 반박한 부분에 찬성하는 나의 의견을 덧붙이고 싶다. 페노로사는 사진의 예를 들어 현실을 묘사하는 것이 예술의 요건이 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즉, 현실의 세밀한 묘사가 예술이라면 사진 또한 그렇지 않겠는가 하는 논리이다.
필자는 사실주의와 이것을 연관시키고 싶다. 당시 몇몇 예술사가들은 사진의 발명으로 인해 현생을 재생산하는 회화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다고 주장했다. 간단히 말해 사진이 등장하게 됨으로써 현실에 대한 그림 그리기가 땅에 떨어져버린 것이다. 하부구조의 기술 쇄신이 시각예술이라는 상부구조적 전통을 능가한 것이다. 대향생산(사진)이 수공예적인 독창성(미술)을 대체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회화의 종말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는 사물(객체, 혹은 소설에서의 표현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불확실성을 포함시키게 되는 것으로 이어졌다. 예를들어 외양이 빛에 따라 어떻게 변하고 재빠른 움직임에 어떤 영향을 받는지를 보여주었다. 우리는 사물을 고정한 것으로 보지 않고 변화하는 것으로 본다. 우리의 시선이 조금씩 바뀔 때마다 나무도 변화한다. 세잔느의 관찰자가 포함된 풍경이 이것이 아닐까 한다. 말하자면 그저 복제된 이미지는 재생산할 수 있는 현실일 뿐인 것이다. 이러한 기계적이며 몰 가치적인 현실은 사진이 떠맡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존의 회화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필자는 독창적인 예술작품의 권위나 자율성이 복제불가능성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