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퇴계는 이의 인식을 성찰과 체험으로 가능하다 하였다. 그러므로 「존양체찰은 오가의 종지라」하여 존양 혹은 존성함에 있어서 이를 체험하고 성찰하여 사람의 본래적인 성을 존양하여 덕성을 기르고, 천리를 성찰하고 체험함으로써 그것의 인식이 가능하다 한 것이라, 천리와 성의 본질을 성찰 및 체험으로 인식한다는 것은 직관적방법을 뜻하는 것이라, 덕성의 존양은 수양을 의미한 것이다. 존양이란 심이 발동하기에 앞서서 미발지중(성)을 기르는 것이니 궁리진성의 방법이 자연 내향적인 심의 문제로 돌아 가게 된다. 그리하여 내면적인 체험이 중요시되고 오랜 존양성찰의 공부가 익어 도덕적 연성과 절조의 기백이 인격화 된다. 그러므로 독서도 한정이 있게 되며 박학보다는 오히려 심성의 수양에 필요한 사색으로 이인 근본 실재를 주체적으로 파악하되 그것은 다만 이론적이며 지식적 파악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인 체험과 성찰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므로 「그래서 수시수처에서 관성체험하되 이 심을 방일치 않게 할 뿐이다」하였다. 이러한 경향은 사회적인 참여활동보다 내면적존양을 치중하는 퇴계학풍을 낳게 하엿다. 퇴계학파는 경 혹은 인의 문제에 집중적인 관심을 모아 도의주의적인 경향이 강하게 되었으며 이로써 또 심성정문제에 관심을 집중하여 사단칠정의 문제 중심적인 연구 과제로 드러난 것이다.
또 인식론의 한부분으로서 지행문제에 있어서는 지행호진을 주장한다. 이 지와 행의 문제는 이론과 실천의 문제와 같은 것으로서 유학에서는 전통적으로 중요시 하여왔다. 그런데 퇴계는 중국의 왕양명의 지행합일에 대하여 반박하는 가운데서 감성적 단계의 지행은 합일이나 리성적 단계에서는 지행이 병진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