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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황권 신비화
황제(皇帝) 관념의 연원은 이미 오래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제(帝)’라는 문자는 갑골문(甲骨文)이나 금문(金文)에서부터 신격(神格)을 지칭하는 문자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진시황은 황제의 용어를 채택할 때 어떠한 의미로 받아들였는지 모르지만 천(天)과 지(地)를 주재하는 천황(天皇)·지황(地皇)보다도 존귀한 존재라 하는 신하들이 건의한 ‘태황(太皇)’이라는 용어를 그가 거부하면서 이 가운데 ‘황(皇)’이라는 문자만을 살리고 동시에 상고(上古)시기의 ‘제(帝)’라는 호칭을 취하여 황제의 용어가 채택되었다고 한다. 여기서 태황은 ‘천(天)’과 ‘지(地)’를 포괄하는 우주질서의 주재자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진시황은 일단 이를 부정하는 자세를 보인다. 진시황이 굳이 원하였던 ‘제(帝)’라는 칭호는 진(秦)이전에도 이미 사용된 바가 있었고, 그 의미가 아무리 신성성(神聖性)을 지닌 것이라 하여도 상당히 현실적인 의미를 내포하였던 것이다.
종래 그의 통치방식에는 특히 통치의 정당성을 얻기 위한 측면에 신비주의적 색채가 두드러지게 나타남이 자주 확인된다. 황제의 호칭도 어디까지나 신비적 존재인 ‘황(皇)’과 역시 신성을 보유하여 숭배의 대상이었던 ‘제(帝)’를 결합시켜 만들어낸 것인 만큼 인민들에게는 거의 신성시되어 경외(敬畏)의 대상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임이 틀림없다. 그리하여 이러한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예를 들어 극묘(極廟)를 건설하고 아방궁(阿房宮)의 구조를 내밀(內密)하게 조성하였으며, 개인적으로도 선인(仙人)을 찾거나 불사약(不死藥)을 구하는 행동을 보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