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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골은 제4공화국 시기에서부터 기본적으로 초국가주의는 프랑스의 위대성을 손상시킬 것이며, 나아가 진정한 유럽의 재건에 장애물이 될 것으로 우려하...
본문/내용
드골은 제4공화국 시기에서부터 기본적으로 초국가주의는 프랑스의 위대성을 손상시킬 것이며, 나아가 진정한 유럽의 재건에 장애물이 될 것으로 우려하였다. 그래서 유럽을 재건하는 데는 기본적으로 국가연합 또는 국가연합적인 조직을 만들어서 국가들의 고유한 성격을 유지하면서 유럽의 재건을 구상하였다. 1958년 재집권하면서부터 통합과 초국가성에 입각한 유럽적인 조직은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지 반대하고 유럽을 조직화하는데 있어서 국가의 독립과 안보를 해치지 않은 방향에서 추진하고 했다.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 : 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와 유럽방위공동체(EDC : European Defence Community)를 공격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그의 원칙에 근거한 것이다.
드골은 1961년 2월 당시 외상인 푸세를 중심으로 하여 특별위원회를 결성, 유럽의 정치적 동맹을 유도하려는 의도를 제시하기도 했다. 이것은 외무장관들의 주기적인 회합을 위한 정치적 기구를 만들어서 회원국가들의 유럽정치를 조정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발효할 경우 3년 후에는 통일적인 외교정책을 수립하고, 점진적으로 연합 속에서 기존의 유럽공동체(EC : European Communities)를 이에 집중시키는 기구를 구성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에 대해 유럽경제공동체(EEC : European Economic Community)의 회원국들, 특히 네덜란드와 벨기에가 이에 저항하였다. 푸세는 이 안을 약간 수정하여 제2차, 제3차안(案)을 제출하였으나 회원국들의 반대, 특히 은폐된 초국가성이라고 공격한 네덜란드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하였다. 이런 푸세안의 초국가성은 원래 드골의 사상과는 반명제를 가지고 있었으나 유럽의 현실을 그대로 인식한 드골의 상황의 정치와 기회의 정치를 적절하게 적용한 것이었다. 푸세안이 비록 채택되었을지라도 초국가성을 배제하는 방향에서 유럽의 결합, 또는 유럽인들의 단합을 더 일찍이 이끌었을 것이다.
참고문헌
『드골의 外交政策論 : 골리즘을 중심으로』, 집문당, 1997.
『동아원색대백과사전』, 동아출판사, 1985.
『프랑스의 대숙청 : 드골의 나치협력 반역자 처단 진상』, 中心,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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