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역신은 사람으로 변신하여 밤에 그 집에 가서 아내와 동침을 하였다. 그러나 처용은 역신을 꾸짖지 않고 ꡒ동경 밝은 달에 밤새워 노니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가라리(다리) 내히더라. 둘은 내해인데 둘은 뉘해인고ꡓ라는 노래를 부르니, 역신이 현형(現形)하여 꿇어앉아 잘못을 빌었다. 그리고는 내가 공(公)의 아내를 사모하여 지금 과오를 범하였는데 공(公)이 노하지 아니하니 감격하여 차후 공(公)의 형용을 그릴 것만 보아도 그 문에 들어가지 않겠노라 하였다. 이처럼 처용의 형상을 문 앞에 붙이고 역신을 물리치는 경사를 맞으며 벽사진경의 축술 종교적 토착신앙이 나라 안에 성행되었다. 이에 다시금 망해사(望海寺)라는 절을 세워 용왕에게 감사드리며 그 덕을 칭송하였다고 한다.
여말(麗末)의 이첨(李詹)의 시에 의하면 처용무는 처음에는 2인무였는데, 이조의 성현(成現)의 용재총화(傭齋叢話) 권1에서는 1인무로, 그 이후에는 오방처용무(五方處容무)로 5人이 추었다가 악학궤범 권5에는 「학연화대 처영무합실」로 종합가무극 성격을 띠고 연희되었다. 이와 같이 용신을 소재로 한 동해바다와 관련된 처용무의 발생을 살펴보았듯이 남해 통영바다 중심으로 추어진 춤으로는 통영승전무가 있다. 통영승전무는 통영검무와 통영북춤으로 구성되어져 통영지방에서만 추어졌던 춤이다. 바다를 인접한 통영지역에서 생성·발전해 온 춤으로 그 역사가 유구하나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 장군이 싸움터와 병선 위에서 장졸들의 사기를 돕고 …
여말(麗末)의 이첨(李詹)의 시에 의하면 처용무는 처음에는 2인무였는데, 이조의 성현(成現)의 용재총화(傭齋叢話) 권1에서는 1인무로, 그 이후에는 오방처용무(五方處容무)로 5人이 추었다가 악학궤범 권5에는 「학연화대 처영무합실」로 종합가무극 성격을 띠고 연희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