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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 모립제 고용노동의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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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설명

읍모군·향군이라 불리기도 했던 향모군은 역소 부근의 군현, 면·리에서 지방관의 책임 하에 선발·고용되고 있었다. 향모군을 고용함에 있어서도, 역...

본문/내용

읍모군·향군이라 불리기도 했던 향모군은 역소 부근의 군현, 면·리에서 지방관의 책임 하에 선발·고용되고 있었다. 향모군을 고용함에 있어서도, 역시 작업의 종류, 역소의 위치, 고용기간, 고가의 액수, 지급 방법 등이 미리 제시되었고, 그에 따라 응모하는 자들을 고용함이 원칙이었다. 향모군을 선발 고용하는 데 관련된 업무는 해당 읍의 색리, 또는 풍헌·약정과 같은 면임 등이 담당하고 있었다. 향모군의 경우도 근착자를 일단 모립의 대상으로 삼았다. 널리 관내에서 근착자를 선발하라든지, 관내가 아닌 타경인이라도 관내 주민과 밀접한 관계에 있어서 신원이 확실한 자, 곧 ‘근각상련자’를 고용할 것 등이 강조되곤 했다. 비변사등록 181책, 정조 17년 4월 15일, 원릉개수도감의궤 이문질, 계묘 8월 16일, 천원등록 기유 7월 18일, 8월 26일, 효종녕릉천릉도감의궤 이문질, 6월 14일, 10월 12일. ‘농무방극’한 농번기에는 원립자가 적어서 급가책립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선왕후산릉도감의궤 이문질, 4월 23일. 1855년(철종 6) 문조수릉 천봉산릉도감에서 양주목의 향모군을 고용하려 했으나, 결과는 ‘일불응모’한 형편이었다. 마침 일손이 모자라는 추수철인 데다가, 다른 해보다 풍년이 든 해였기 때문에 모립하기 어렵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도감에서는 역소 부근 각리에서 매일 10명씩 사역하되, 모군의 관례대로 고가를 지급하기로 결정했다. 역시 급가책립의 방식이었다. 문조수릉천봉산릉도감도의궤 이문, 을묘 8월 27일. 농번기에는 빈농층일지라도 자유의사에 따라 작업장으로 끌어들이기가 어렵게 되고, 그러할 경우에는 모가를 주고 강제 사역하는 일이 많았다. 효종녕릉천릉도감의궤 감결, 7월 23일. 향모군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구성되어 있었다. 농한기의 단기간 계절노동에 종사하는 빈농들은 모립제 시행 초기부터 흔히 찾아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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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 : wsne*****
Date : 2013-06-06
FileNo : 16053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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