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설명
2. 문화대혁명에서의 탈출과 현대화 과정
문화대혁명의 시기는 혼란의 시기였다. 단순한 혼란이 아닌 그야말로 국가의 체제가 흔들리고, 중국...
본문/내용
2. 문화대혁명에서의 탈출과 현대화 과정
문화대혁명의 시기는 혼란의 시기였다. 단순한 혼란이 아닌 그야말로 국가의 체제가 흔들리고, 중국의 모든 전통이 무시된 극도의 혼란기였다. 따라서 사람들은 문혁이라면 지긋지긋하게 느끼고, 그와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꺼리는 경향이 생겼다.
모택동의 뒤를 이어 국가주석이 된 사람은 화국봉이다. 그는 4인방을 숙청함으로써 실질적으로 문혁을 끝낸 사람이지만, 그는 모택동의 사상을 답습한다는 이유로 등소평에게 공격을 받고, 실권을 상실한다. 등소평은 이 때 부주석,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총리, 해방군 총참모장등 요직에 복귀함으로써, 실권을 잡게된다.
1978년에는 소위 <3중전회>라 부르는 <중국 공산당 제3회 총회>가 열렸다. 이의 의의는 문혁에까지 이르는 모택동의 혁명노선에서 오늘날의 현대화 노선으로의 결정적인 전환점을 이루는 것이다. 이의 결의를 옮겨 쓰면 다음과 같다.
`문화대혁명에 대해서는 역사적으로 또는 과학적으로 실사구시의 태도로 바라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택동 동지가 이 대혁명을 일으킨 것은 주로 소련이 수정주의로 변신한 것을 감안하여 수정주의에 반대하고 그것을 방지하는 견지에서였다. 실제의 과정에서 일어난 결점이나 잘못에 대해서는 적절한 시기에 경험 교훈으로서 총괄, 전당과 전국인민의 인식을 통일시킬 필요가 있지만 시급한 일은 아니다.`
그 3년후 역사 결의에서는 문혁을 내란이라고 부정함과 동시에 문혁을 발동한 모택동의 이론과 지도까지도 거의 전면적으로 부정했다. 다시 말해 문혁의 지도이론으로서 모택동이 제기한 <계속혁명론>은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잘못 해석한 것인 동시에 <모택동 동지는 점차 오만불손해지면서 실제에서 유리되고, 괴리 되어 날이 갈수록 주관주의단독행동의 분위기
참고문헌
1.중국 당대 40연사, 고려원, 신 승하저
2.현대 중국의 전개, 연구사, 안도오 마사시 외 저, 이 균은 역
3.중국탐색 `88-`94, 지식 산업사, 민 두기 저
4.중국 오천년사, 대광서림, 김 영진 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