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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정치국 위원이 되었으며, 유소기와 함께 경제발전을 위하여 물질적 보상제도를 채택하고, 엘리트를 양성하자는 실용주의 노선을 주장하였다. 그런데 등소평은 모택동의 노선에 정면으로 대항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문화대혁명 시기에 등소평은 `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실권파` 제2호로 비판받았으며, 홍위병으로부터 반모주자파의 수괴라는 이유로 실각하였다.
그후 두 번에 걸친 모택동에게로의 편지와 총리 주은래의 추천 등을 계기로 1973년 3월 복권되어 국무원 부총리가 되었다. 그러나 1975년 말부터 1976년 1월에 걸친 `등소평 우파 반격풍조`에 대한 비판투쟁과 4월 7일에 있은 제1차 천안문 사건의 배후조종 세력으로 지목되어 또다시 실각했다. 1976년 9월 모택동이 죽고 화국봉이 모택동 추종자 4인방을 숙청하는데 성공하자, 1977년 7월 당 중앙위원회 회의에서 복권되었다. 이는 문화대혁명으로 파괴된 경제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등소평의 경험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어 1978년 11월 중국공산당 제11기 중앙위원회 제3회 총회에서 등소평은 중국의 최고지도자로 복귀하게 된다. 그후 화국봉과의 권력투쟁 끝에 1981년 실질적인 권력을 장악하였다.
이때부터 실용주의노선에 입각하여 과감한 개혁조치들을 단행하였다. 그의 집권 후 기업가와 농민의 이윤보장, 지방분권적 경제운영, 엘리트 양성, 외국인 투자 허용 등으로 중국경제가 크게 성장하였다. 특히 농업생산 증진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피폐한 농민들의 생활 수준을 높이기 위해 구체적으로 실시한 농업정책의 제일보는 농민에게 토지경작권을 이전해 주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농민들에게 토지가 그들의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어 농업 생산성의 향상을 가져왔다.
참고문헌
1. 한국인의 짝사랑, 중국 : 임계순 지음 : 김영사.
2. 중국 사회의 기본 구조 : 휘이사요 용 원저, 이경규 번역 : 일조각.
3. 현대 중국의 이해 : 장경섭 지음 : 사회문화연구소.
4. 중국의 선택 : 한국경제신문사.
5. 21세기 중국 : 박정동 지음 : 한국경제신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