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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갑정역의 은납화 현상을 볼 것 같으면 원래 이갑정역의 직책은 세
량의 징수·황책의 편조·이내의 치안유지등이 주된 임무였다. 그러나 후대
로 내려오면서 상공물료와 지방공비까지 이갑정역이 부담하게 되었고, 그 품
목에 있어서도 매우 복잡하고 자주 변동이 있어 왔으며 세량에 있어서도 일
정하지가 않았다. 그런데 요역의 은납화와 더불어 이갑정역에 있어서도 먼
저 상공물료와 지방공비만 먼저 은납화 하는 경향을 보니기 시작하였다. 이
미 복건지방에서는 성화·홍치년간에 이갑정역이 은납화되는 부분을 「강」
이라고 이름하였으나 이후 물료와 공비는 개별적으로 은납화하게 되었다.
즉 상공물료에 대해서는 정덕15년(1520)에「매민미일석 남자성정각징은팔
분」이라는 원칙을 만들었다. 즉 세량일석 및 성정일인에 대해서는 각각
은팔분으로 과파한다는 것으로 물료에 대한 팔분법이 창행되었다. 이렇게 징
수된 정료은은 부로 보내어지고 부에서는 장해로 하여금 은으로 필요한 물
료를 조달해서 경사에 운송하여 호부에 납부하였다.
한편 지방공비에 대해서는 이미 정덕년애 은납화가 이루어져 강은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정덕15년네 이르러 어사 침약에 의하여 새로운 개혁
이 시도되었다. 즉 지방공비를 정강·잡강으로 나누어서 그 총액을 현년이갑
내에 포함되어 있는 인정과 전량에 대하여 인정부분에 사정도 전량부분에
육정도의 비율로「정사량육」으로 분배하여 일률적으로 과파하였다. 그후
점차로 액외의 부과 역시 증가되어 갔고 동시에 가정년간에 십단법이 형성
되면서 정료은·강은은 물론이고 이갑정역 그 자체가 십단법 속으로 균수다
병합하는 추세를 보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