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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관측이 가능하겠지만, 위에서 보듯 87년 대선을 둘러싼 선심성 공약이라는 주장이 가장 신빙성 높은 주장이다. 이전까지 정부에서는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로 다른 지역의 간척(인근 군장지구)을 추진하고자 했으나, 87년 대선 당시 전북지역에서 평민당에 비해 열세를 면치 못하던 민정당 노태우 후보 측이 전주지역 기자회견을 통해 급작스럽게 “새만금 사업 발표”를 한 것이다. 바로 다음날 농수산부는 89년 상반기 세부실시계획 확정 추진, 96년 방조제 완성을 발표하면서 측면 지원을 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후 새만금 간척사업은 91년 노태우 대통령과 김대중 신민당 총재의 영수회담의 주제가 되기도 하고, 92년 4.13총선 / 92년 대선 / 95년 지자체 선거 등 선거철만 되면 “조기 완성”과 “자신이 주장했음”을 강조하는 정치인들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98년에는 대통령이 직접 새만금 지역 공단유치를 위해 외국기업 총수와 전화통화까지 하고, 99년 농공단지 건설이 전면백지화되면서 새만금 사업 자체도 전면 재검토되는 분위기가 있자, 전북지역 국회의원들과 전북도지사가 관련회의를 열고 계속 추진을 결의하는 등의 모습을 보였다. 이렇듯 새만금 문제는 노태우-김영상-김대중 3개 정권을 거치면서 단순한 지역문제가 아닌 표의 향방을 좌우하는 정치권의 주요한 수단이 되었다. 따라서 새만금 간척사업문제는 단지 “거대한 토목공사 ”수준을 넘어 전북지역 민심을 잡는 정치권의 주요 전략으로 다가섰던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가능한 것은 “대규모 토목공사 = 지역개발 = 이권”이라는 전통적인 사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도로건설, 그린벨트 해제, 핵발전소 건설 등 대부분의 환경파괴에 대한 가장 대중적 이데올로기는 “지역개발”이데올로기이다. 하지만 대규모 토목공사를 통한 일시적인 신규 일자리 창출이 그대로 지역개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어차피 공사는 몇 년이후면 끝나게 되고, 시화호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남는 것은 오히려 오염된 물과 복구되지 않는 삶의 터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