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여류`라는 수식어가 갖는 의미가 무얼까. 그것은 아마도 단순히 `여성`이라는 단어와 동의어일 뿐일 수도 있겠지만, `여류`란 다분히 정치적인 사용의 맥락을 가지고 있다. `여성`의 반대말은 `남성`이지만, `여류`에 반대되는 말은 `남류`가 아니다. 그것은 `주류`이다. `중심`이다. 감히 여성이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 서는 것을 혐오(misogyny)스럽게 생각하는 중심의 횡포가 거기에 있다. `여류`라는 이름을 달고서, 그 여성은 중심의 변두리에 서서 중심의 너그러움을 빛내는 `꽃`이 된다. `창부`가 된다. `어머니`요, `아내`가 될 수 있는 자격이 그들에게는 없다. 감히 중심을 넘본 죄. 그것은 엄연한 유죄이므로. 반대로 `여류임`을 거절한다면, 그 여성은 철저히 비난받고 그 세계에서 지양될 것이다. 그동안 너무나 많은 여성들이 정신 병원으로 쫓겨 가고 자살을 했다.
그러한 여성의 이야기가 [내 책상위의 천사]이다. 작년 이맘때 [피아노]라는 영화로 국내에 소개된 바있는 제인 캠피온이라는 뉴질랜드 여성의 작품이다. 유년기에 스스로 벙어리가 되기로 결심했던 한 여성이 `피아노/육체`라는 물리적인 도구를 가지고 커뮤니케이션을 이루어가는 그 과정이, 비록 낭만적 사랑의 환상에 빠져있는 현대여성들의 강박관념을 그대로 드러내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받고 있다해도, 언어를 통해 포착되지 않는 실재의 거대한 침묵에 아연하던 내게는 그때, `피아노/육체` 커뮤니케이션의 물리적인 힘이 충격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다시 가을, 캠피온 감독의 데뷔작이었던 [내 책상위의 천사]가 한발 늦게 왔다. 이 영화는 자넷 패터슨 프레임이라는 뉴질랜드의 작가의 자서전을 토대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영화관에 가기전에 나는, `인간이 `동정없는 세상과 어떻게 싸우고 화해하면서` 어떻게 한 사람으로써 성장해 가는지를 보여준 감동적인 작품`이라는 평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