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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과학과 윤리는 절박한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과학자들 사이에는 과학과 윤리가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이런 견해의 바닥에는 과학이 중립적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 이 믿음의 뿌리부터 찾아보기로 하자.
근대과학을 낳은 16, 17세기의 과학혁명은 궁극적 설명을 버리고 즉각적 기술을 택했다. ‘왜’에서 ‘어떻게’로의 전환은 과학을 신학, 철학에서 독립시켰지만 가치문제를 과학으로부터 배제하는 데도 이바지했다. “신학, 형이상학, 도덕…에 휘말리지 않고 실험에 의해 자연에 관한 지식을 향상시킨다” 1663년 왕립학회 간사 후크가 기초한 헌장에 나오는 이 구절은 이런 방향을 잘 보여 준다. 그 뒤 3백여년 동안 이 충고를 받아들인 결과 과학자들은 윤리와 담을 쌓게 되었다.
근대 이후 과학과 기술의 제휴는 과학에서 윤리가 문제되기에 이른 계기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과 기술의 협조는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둘은 계속 불협화음을 내다가 19세기부터 긴밀한 접촉이 시작되었으며 완전한 융합은 20세기에 들어와서야 이루어졌다.
탈레스에서 비롯해 3천년 가까이 계속된 과학의 순수성은 버젓하게 남아 있었다. 18세기 영국에서 과학은 교양과 돈과 여유가 있는 계급을 위한 활동이었고 프랑스에서 과학아카데미는 교양있는 신사발명가클럽이었다. 19세기 독일에서 과학은 오염되지 않은 대학학문이었다. 소련에서는 혁명 10년 뒤에도 아직 순수과학의 이데올로기가 과학아카데미를 지배하고 있었다.
라비츠가 ‘대학과학’이라 부르는 순수과학의 전성기는 프랑스혁명에서 시작해 원자폭탄으로 끝났다. 19세기부터 과학은 제도화의 기초를 마련했고 급속히 전문화되었다. 과학은 1차대전에 깊이 관여했으나 여전히 대학에 근거를 둔 순수과학으로 이해되었다. 과학의 사회에 대한 충격이 커지는 가운데에서도 과학자들은 상아탑에 안주하고 있었다. 유일한 예외는 1930년대에 과학의 오용에 항의한 한 무리의 영국과학자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