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유형지에서>를 읽으면서 나는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섬뜩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이 단편의 주제는 비인간적인 권력 제도가 갖는 정의의 극단적인 왜곡인 것 같다. 견제하는 장치가 없을 떄, 권력은 자신의 전체주의적인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의 전통을 고집하거나 사이비 종교적인 광신적 수단에 의존하는 맹종성, 맹목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권력의 맹종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권력 분립이 필요한 것이겠지... (요즈음 헌법 시간에 배우고 있는 권력 분림의 필요성을 새삼스럽게 느꼈다고 할까)
법치국가의 기본 틀인 권력 분립의 원칙을 비웃기라도 하듯 입법, 행정, 사법 등 모든 것이 기계를 담당하는 장교의 한 손아귀에 들어 있다. 또한 피고의 죄는 처음부터 확고부동하게 결정되어 있다. 왜냐하면 장교가 말하듯 `어떤 범죄건 의심할 여지없이 명확하게 기계가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런 세계에서의 처형은 이미 범죄 자체와는 무관하다고 생각된다. 장교가 내리는 판결은 완전무결하여 이에 대한 이의 제기는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죽은 전임 사령관을 광신적으로 숭배하는 장교는 한계를 모르는 권력에 종속되어 왜곡된 정의의 이념으로 가득 차 있는 인물인 것 같다. 그의 맹목적인 신념은 스스로 처형 기계에 누워 희생될 만큼 광적인 것이다. 그러나 최고의 판결을 정확하게 수행해야 할 기계는 예기치 못한 불완전한 작동을 보여준다. 그 떄문에 법제도의 충실한 수호자이며 신봉자인 장교가 스스로 완벽하다고 믿는 제도에 의해 희생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자신의 믿음이 미혹이고 착각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죽는다. 장교는 법을 신봉하면서 수호하는 법의 종사자로 희생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