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시집에서 도망 와서 강물로 뛰어들려는 딸과 그녀의 머리를 물 속에 처박으며 죽으라고 하던 부모가 겨우 소나기를 맞지 않기 위해 뛰어가는 것을 보고 산옥은 일종의 분노를 느낀다.
산옥이는 무엇에 속았다는 생각이 듦을 어찌할 수 없었다. 죽딘 않아요, 아바지 한번만 용서해 달라우요, 아이고 오마니 나 좀 살레주소고레, 하던 젊은 여자에게 소속은 것이다. 그리고 그네의 아버지와 어머니에게도. 그런데 이들은 자기만을 속인 것 같지 않았다. 다른 누군가도 속인 것 같았다. 누굴까. 옳지 알았다. 강물이다. 강물까지 속인 것이다. 오늘은 또 별나게 파아라니 아름답던 그 강물까지를 이들은 속인 것이다.
그 중에서도 산옥이는 자기 낫세의 젊은 여자가 강물을 속였다는 데에, 바로 젊은 여자 낫세인 자기가 강물을 속인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들이 말하는 삶과 죽음의 치열한 한계 지점, 바로 그 곳에 서있는 산옥의 병든 신체는 위선과 희롱을 용납하지 못한다. 생존을 위해 날마다 희롱당하는 신체 자체가 위선에 대하여 날마다 준엄하게 거절하고 있는 것이다. 삶의 바닥에 누워서 한 움큼의 불을 힘겹게 지키고 있는 산옥의 눈에는 허황한 소시민의 도덕이 삶의 표면에 쏠리는 물거품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산옥에게 있어서 강물은 침범하지도 않고 침벙당하지도 않는 절대의 순결이다. 온갖 더러움을 씻어주는 정화의 근원이며, 삶의 본질을 쇄신하는 생명의 원천이다. 인간의 신체가 바로 자연의 일부라면, 인간의 내부에 흐르는 피는 바로 축소된 강물일 것이다. 산옥은 어떠한 착취로도 깨뜨릴 수 없는 생명의 신비를 강물 앞에서 확인한 것이다. 산옥은 결국 강물에 몸을 던지는데, 그녀의 죽음은 죽음을 통한 정화라고 느껴진다. 죽음보다는 언제나 삶의 의미가 있는 것이지만, 강물에 대한 사랑이 매개됨으로써 산옥의 죽음은 삶과 서로 통하여 작용하는 내용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