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사람의 아들>은 종교의 문제를 다루면서 이 시대의 진정한 `구원`이나 `행복`을 뿌리깊이 파헤치고 있다. 제목에서 시사하는 것처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사람의 아들`-혹은 `신의 아들`이란 예수이다. 예수는 약혼자가 있는 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났다. 인간의 뼈와 살을 가지고. 그러나 그는 여기에 또 하나의 신-혹은 신의 다른 모습-이 내려보낸 진정한 `사람의 아들`로써 아하스 페르츠를 등장시킨다. 이 소설은 아하스 페르츠의 신학적 방황과 궤를 같이 하는 70년대의 인물 민요섭과 그를 따르는 조동팔이 바깥 이야기로 등장한다.
소설은 살해당한 민요섭의 행적을 쫓는 남경사의 눈으로 진행된다. 일종의 액자 소설로써, 민요섭이 남긴 아하스 페르츠의 일대기가 담긴 노트의 내용이 중간 중간 발췌된다. 소설은 우리 종교의 가장 절실한 문제인 `지상의 구원`과 `천상의 구원`을 논하고 있다. 당장 거리에서 굶어 죽어가는 사람들. 병과 고통에 신음하며, 이유 없는 죄과를 치르는 이들. 이런 사람들에게 허락되어 있는 것은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천상에 대한 막연한 기대뿐이다. 어린 시절, 남다른 기지와 총명함을 가진 아하스는 메시아임을 자처하는 광인을 만나 첫 번째로 이 문제를 떠올리게 된다.
사실 우리 모두가 외면하고 있는 문제이지만, 그렇게 전능하신 하나님이 어째서 저 숱한 인간들을 고통과 신음속에 버려두는 것일까. 어째서 신을 저버리는 반역자는 생기고, 신을 애타게 불러도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카인이나 유다의 배반, 저 소돔과 고모라의 독신, 신을 부정하고 현실의 삶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된 것인가. 신은 자유의지를 주셨다고 말한다. 선한 의도를 심어두었으나, 결국 어떻게 하게 될지에 대해선 인간에게 선택하게 하였다는 것, 그러나 왜 신은 그러한 결과를 알면서도-죄를 지을 줄 뻔히 알면서도, 아무리 자유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은 이미 그런 결과를 예상하고 있지 않겠는가- 그들을 방치해두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