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인터넷상에 가장 많은 연관 사이트를 가진 철학자가 들뢰즈라는 말이 한때 있었다. 중심을 갖지 않고 편재하는 형태로 퍼져나가는 네트워크의 형상이 그의 사상내용과 상당히 유사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가 다루었던 주제들 중에 큼직한 몇 가지만 들어도 그와 같은 유사성은 쉽게 확인된다. `반 오이디푸스` 에서는 욕망을 다루었고, `천 개의 고원`에서는 유목민적 사유에 대한 실험적인 설명이 높은 빈도로 이루어졌으며, `영화`에서의 철학적 대상은 이미지였다. 욕망은 단적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유동적이고 자기 모순적인 성격을 갖는다. 욕망은 흐름이다. 유목민적 사유란 말 그대로 정주민적 사고 방식과는 달리 어떤 중심과 좌표에 준하여 위치하지 않고 그러한 준거점들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사유를 뜻한다. 이미지는 그 모호함과 다의성 때문에 이미 오래 전부터 철학에서는 개념이라는 주먹 사이로 빠져나가는 물과 같은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말하자면 들뢰즈는 지배적인 전통적 사유가 모호한 대상으로 여기던 것을 자신의 주요한 사고 영역으로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그가 철학의 커다란 분류에 따라 비합리주의에 속하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개념적 합리성을 넘어서는 어떤 신비의 영역을 향했던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들뢰즈는 모호한 영역에 대한 진지하고도 치밀한 사고를 쉴 새 없이 진행시켰던 것이다. 커다란 그물코를 가진 전통적 개념이 포착하지 못하기에 모호하다고 불리는 대상들에 가서 닿기 위하여, 그는 미세하면서도 움직이는 그물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들뢰즈는 `현대의 위대한 스콜라 철학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말은 여러 측면을 함축할 수 있지만 스콜라 철학에 대한 한가지 이미지를 떠올린다면 뚜렷한 의미가 드러나게 된다. 스콜라 철학자들이 머리카락 끝에 천사가 몇 명 앉을 수 있는가에 대해 논쟁했다는 것은 꽤 익숙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