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 갑골문자가 사용되던 기원전 1300년께부터 3천수백 년 동안 본질적으로 동일한 체계를 유지해온 그 문자사(文字史)의 연면성(連綿性). 한자는 지금 사용되고 있는 문자 체계 가운데서 가장 기다란 역사를 지닌 체계다. 지금 세상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문자이자 서양 문화를 그 뿌리부터 담아온 로마자의 역사도 2천5백 년에 지나지 않는다. 문자의 발달 단계로 보면 한자보다 훨씬 더 나아간 체계인 한글의 역사는 5백수십 년에 지나지 않는다;
* 형태가 소리만이 아니라 의미와 대응하는, 그래서 일음절로 발음되는 하나의 글자가 그대로 하나의 형태소가 되는 표의성(表意性). 위에서 언급한 한자의 독특한 발달 과정과 함께, 바로 이 점이, 즉 표의성과 표음성의 결합이 한자 물신주의를 낳는다. 그것은 위험한 유혹이지만, 뿌리치기 힘든 유혹이기도 하다. 한자는 그 하나하나가 의미 단위다. 다시 말해 형태소다. 또 한자는 그 하나하나가 음절 단위다. 한자는 부분적으로 소리글자이기도 하다. 한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형성자는 ꡐ소리글자로서의 한자ꡑ라는 만화경 속의 아름답고 진기한 풍경들이다;
*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이런저런 속자(俗字)들, 국민당 정권의 간체자(簡體字)와 공산당 정권의 간화자(簡化字), 일본식 약자(略字) 등 수많은 이체자(異體字)의 존재. 이것은 로마 글자의 I와 J가 한 뿌리에서 나왔다거나, V와 U가 한 뿌리에서 나온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문자의 곡예다. 한자는 모든 문자 체계 가운데 가장 호사스러운 체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