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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중세에는 자연 밖에 존재하는 초월적인 신이 인간을 규제하는 중세적 질서의 틀을 이루고 있었으므로 자연은 중세적 속박을 벗어나는 해방이 원리였다. 그러나 성리학(新儒學)에 있어서는 초월적 신에 의하여 인간과 사회가 규제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연 그 자체와 인간 사회를 일체화시킴으로써 자연은 인간의 해방 원리가 아니라 일종의 규제 원리였다. 그러므로 계몽사상은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명제로 표현되었으나, 실학에서는 오히려 ‘자연에서 벗어나자’는 형태로 전개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다산 정약용은 무엇보다도 우선 ‘大學’의 근본 체계에 대한 주자의 팔조목설을 부정하고 格物致知의 이조목과 성의, 정심 이하의 육조목을 분리하여 격물과 성의를, 다시 말하여 물리와 도리, 자연과 당연을 분리시키고 있다.
다산은 자연을 사변적이고 규범적인 존재로서가 아니라 객관적인 순수 존재로 파악하여 과학적인 자연관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있으며 자연의 물리와 인간 도리의 일체화를 부정하여 자연의 규제에서 인간을 해방시킨다. 그러므로 自然과 人事와의 분리는 근대지향을 위한 실학의 적극적 노력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정약용은 그의 ‘技藝論’에서 “인간이 금수와 다른 점은 기술을 갖는데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는 정당하게도 인간과 짐승을 구별하는 기준을 ‘기술’에 두었으며, 더욱이 그것은 역사의 발전에 동반하여 중지를 모으고 그 중지를 쌓아올리는 것에 의하여 정교하게 된다고 보았다. 이러한 시점은 도리로 부터의 물리의 해방의 논리로서 주목되지 않으면 안되고 ‘性命義理’편중에 의하여 과학적 발상을 마비시켜 온 전통 유학을 내재적으로 뛰어넘으려고 하는 이성의 눈뜸과 근대 지향의 사상적 맹아를 볼 수 있다. 또 기술과 인간과의 관계, 기술과 사회경제 발전과의 관계 및 새로운 기술의 도입 태세를 논한 체계적인 과학기술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서양과학 사상은 이렇듯 당시의 역사적 배경 속에서 실학자들에 의해서 적극적으…
서양과학 사상은 이렇듯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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