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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향덕 정려비
1) 소 재 지 : 공주시 소학동(효가리)
2) 시 대 : 통일신라 - 조선
3) 유적현황 : 공주에서 논산간 국도를 따라 약 3km 정도 가다보면 도로 좌측에 휴게소가 있고 이곳에 향덕의 효자비와 비각이 있다.
향덕에 대하여는 현재까지도 관련된 전설과 지명이 구전되어 오고, 기록상으로도 삼국사기나 삼국유사를 비롯한 각종 문헌에 기록이 실려 있다. 이를 종합하여 보면 향덕은 신라 경덕왕때의 효자로 웅천주 판적향 출신으로 755년(경덕왕 14)에 흉년이 들고 유행병까지 겹치자 향덕의 부모는 굶주리고 병들게 되었다. 더욱이 어머니는 종기가 나서 거의 죽을 지경이었다. 향덕은 정성을 다하여 어머니를 봉양하면서 자기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어머니에게 먹이고 어머니의 종기가 난 곳을 빨아내어 편안하게 하였다. 당시 이러한 향덕의 효행 사실이 보고되자 경덕왕은 향덕에게 벼 300곡, 집 한채와 구분전 약간을 내리고 비석을 세워 그의 효행을 널리 알리게 하였다. 이같은 향덕의 효행은 고려·조선시대를 거치면서도 면면히 전승되고 기려져 왔는데, 이 유적은 그러한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구비는 절단되어 하반부만 남아 있으며 잔존문자는 「지려」와 「삼월 일 중립」이란 글자이다. 크기는 현존 높이 40cm, 저변너비 50cm, 상변너비 40cm이고 두께는 33cm 정도인데 이 비는 「중립」이라한 것으로 미루어 경덕왕대에 세워진 것은 아니다. 잔존부분의 형상을 살피면 모양은 대체로 아래쪽은 넓고 윗부분이 좁은 사다리꼴에 가깝고 판면은 전혀 다듬지 않은 관계로 자연석에 가까운 느낌은 주고 있다. 비석이 이처럼 어떤 격식없이 조형된 점이라든가 서체에 아직 고졸한 맛이 남아 있는 것으로써 혹 라말의 어느 시기에 중립한 것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