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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년간(1990~1995)의 연구현황
19세기 위정척사사상과 운동의 연원은 이미 18세기 후반 이익 문하에서 그의 문인들이 좌파와 우파로 분기하면서 우파에 속하는 안정복·신후담을 중심으로 한 척사론에서 살필 수 있다. 그 뒤 척사론은 서학의 보급·확산에 따라 조선정부에서 수 차례의 박해와 척사윤음의 반포를 통하여 지속되었으나, 1876년 개항을 전후하여 척사에 대한 정부의 의지가 점차 약화되고 개화정책으로 나아가자 재야유생을 중심으로 주도되어 1881년에 이르면 전국적인 규모로 지역과 학파, 당론을 떠나 전유림의 운동으로 변모된다. 그러면 우선 18세기 척사론에 대한 최근의 연구를 알아보겠다.
차기진은 18세기 기호남인의 척사론에 주목하고 척사론의 전개과정과 성격을 척사론의 형성기, 공론조성기, 그리고 반회사건과 척사론의 면모를 검토하였다. 18세기 기호남인계 안에서 제기된 척사론이 일회적이거나 한 개인의 이론으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중시하고, 이것이 어느 시기에 기호남인들의 공론으로 변모되었느냐 하는 점과 반서학 운동인 척사운동으로 변모해 가는 과정 내지는 그 성격의 변모를 고찰하였다. 그리하여 척사론의 출발점은 이익에서 비롯되는데, 처음 보유론적 입장에서 서학을 이해하다가 1857년 이후부터 안정복의 척사론을 영향받아 척사의 입장으로 선회하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신후담이 서양의 영혼설, 천주의 개념이나 속성같은 보유론의 논리, 영혼불멸성·천당지옥설·동정설 등 종교적 요소 등을 자신의 학문이론 위에서 배척하였으며 그의 척사론은 훗날 공서파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