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환멸적 시간과 비선조적 서술
자아 탐구는 현대소설의 중요한 인식적 차원이다. 이런 인식은 주체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세계와의 교섭을 통해 얻어지고, 또 현실에 대한 이해를 동반하는 것이지만, 소설의 주인공은 무엇보다 자신의 혼을 입증하기 위해 떠나는 인물, 자신의 본질을 발견하기 위해 여행하는 인물이다. 그러므로 그는 낯선 길의 끝에서 자신이 누구인가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기차는 7시에 떠나네』의 작중화자가 품고 있는 기본 질문도 <나는 누구인가>(152)라는 점에서, 이 장편소설은 나를 찾아나선 여행을 근간으로 삼는다고 하겠다.
자신의 정체 혹은 본질을 알고자 하는 욕망은 이야기를 전방으로 추진하는 힘이 된다. 원칙적으로 소설에서는 이야기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고, 여로를 밝힐 어떤 지표도 주어져 있지 않다는 뜻에서, 작중인물의 자기탐구는 자기형성과 무관하지 않다. 즉 나는 누구인가의 문제는 나는 무엇이 될 수 있는가라는 생성의 과제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작중인물의 인식 욕망이 소설적 구성을 선조적으로 밀고나가는 추동력이 된다고 보아 크게 무리하지 않을 터이다.
그런데 표면적으로 볼 때 작중인물이 자신의 정체를 탐색하는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기차는 7시에 떠나네』의 전개는 선조적이지 않다. 물론 현대소설이 단선적으로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다양한 갈래와 지류를 지니고 있으며 이로써 소설의 풍요로운 육체를 형성한다. 중요한 것은 소설적 구성을 둘러싼 물음이 단순히 미학적 형식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직선적 단선적 구성과 다원적 삽화적 구성을 두고 어느 편이 미적으로 더 우월하다고 말하는 것은 구성을 그 자체로 승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즉물적으로 이해된 소설적 구성은 미리 주어진 족쇄로 인물을 속박하는 장치를 지칭할 뿐이다. 그것은 작중인물의 행위와 감정, 사유와 욕망에서 흘러나오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