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조선인기업은 초기에는 재래산업을 부활·발전시킨 것이 많았으나, 일본자본의 침투로부터 자극을 받아 새로운 분야에도 폭넓게 진출하였다. 1920년대에 대자본은 고무제품제조업·제사업·직물제조업, 중소자본은 양조업·상업·운수창고업 등이 많았다. 1930년대에 들어서서는 정어리기름제조업·금속·기계기구업 등이 증가했다. 기업의 설립과 운영을 주도한 것은 초기에는 대지주와 상인층이 압도적으로 많았으나, 1920년대 이후에는 서민출신의 자수성가형도 등장하였다. 후기로 갈수록 조선인 자본가층은 두터워졌지만, 기본적으로는 토지자산을 배경으로 하여 금융업과 기업에 참여하는 속성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전시통제가 한층 더 강화된 1942년을 경계로 하여 조선인기업은 강제로 소멸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일제하의 조선인 대자본은 항상 일본자본과 밀접한 상호 의존적 관계를 맺고 있었다. 경성방직이 대표적인 예였다. 조기준은 자본이란 의례히 그러한 것이라고 생각한 때문인지, 아니면 민족적 자존심에 상처를 줄 수 있는 일제와의 의존관계를 들추고 싶지 않았던 때문인지, 자신의 고전적 연구에서 이를 별로 문제삼지 않았다.
그런데 에커트는 최근의 연구에서 조일자본의 상호관계가 숙명적인 것으로 보고 이를 대단히 중시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에서 민족기업의 대표로 인식되어온 경성방직은 실질적으로는 자금·인력·마케팅·노무관리·원료수급·자본조달 등의 모든 면에서 일본인자본(상사·은행)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면서 발전했다. 그 뿐만 아니라 경성방직은 조선총독부의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였고, 조선총독부는 그 대가로 경성방직에 대해 두터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조선인자본과 일본인자본 사이에 대립과 반목의 민족모순보다는 서로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한 경제적 상호의존주의가 더 강하게 작용하였다고 보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