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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 문학비평의 시작
중국에서 문학비평의 력사는 ‘시경’과 ‘서경’의 시대인 주나라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서경’의 ‘순전’에서 “시언지, 가영언…”하는 초보적 시평이 보이기 때문이다. 론어에도 “시”에 대한 평이 보인다. 그러나 그때까지 문예의 개념이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진일보된 비평은 한대를 기다려야 했다.
중국에서 ‘문’이라는 개념이 거의 확립된 시기는 일반적으로 한대라고 알려져있다. 사실상의 문자통일과 유교중심적 교육의 확대를 통하여 문예는 지식인사회에 주요활동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전문적인 문학활동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아무튼 이 시대에 등장한 훈고학의 정리업적들 속에서도 문학비평의 이른 형태를 발견할 수 있다. 왕일의 ‘초사장구’, 정현의 ‘모시정전’, 반고의 ‘한서-예문지’, ‘시경’의 ‘모시서’ 같은 곳에서 상당히 구체적인 문학이론과 비평을 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가 모두 유교의 리념에 맞는 글쓰기를 위한 ‘도덕론’의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본격적인 문학평론은 위진대에 문단이 성립되고 전문적인 작가들이 나옴으로써 비롯된다. 이 시대는 정치적 혼란을 틈타 문학이 드디어 자유를 찾은 시대인 셈이다. 유미주의도 어쩌면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도 있겠다. 덕치의 공용성에서 해방된 문학은 정체성 자체가 흔들리게 되었다. 그에 따라 지식인들은 문학이란 무엇인가, 문학은 어떠해야만 하는가를 고민하게 되었고, 그 결과 본격적인 문학비평이 시작되기에 이른다. 참고로 이 시대의 문학이 그렇다고 하여 절대로 이전의 공용론적 문학관과 단절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문학의 해방이라고 외친 것은 순수문학의 가능성을 지식인들이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을 이른다.
중국에서 본격적 문학 비평은 위문제 조비의 ‘전론-론문’에서 비롯된다. 이 책에서 문학은 기존의 노예적 종속상태에서 벗어나 나라를 다스리는 위대한 존재로 승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