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남북문화권(南北文化圈)의 경계지역인 서울지방 》
현재의 서울지역은 북은 도봉산 · 북한산, 동북은 덕암산 · 천마산의 산악지대, 한강남쪽으로는 남한산 · 관악산의 연봉으로 둘러 싸이고 서쪽이 고양(강북), 김포(강남)의 평야로 터진 한강강구 가까운 계곡지대이며 주거지로서 모든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신석기시대 이전의 구석기시대 즉 홍적세(洪績世, 약 200만년 전부터 1만년 전경)의 서울지역의 자연환경을 정확하게 복원할 수는 없으나 빙하기에는 해면 저하로 서울지구는 현재보다 해발고가 100m쯤 더 높고 황해도 육지이었기 때문에 서쪽을 향하여 무한히 걸으면 중국으로도 갈 수 있었다. 그러나 간빙기에는 다시 해면이 높아지고 신석기시대와 같은 지리환경으로 바뀌곤 하였다.
서울지구에 구석기인들이 살았던 것 같은 흔적이 있으나 인류의 본격적인 거주는 역시 신석기시대부터이며 서울주변 산악지대와 평지와의 접촉지대에 그들 유적이 점철하고 있으며 그러한 유적들은 고양시 선유동, 파주시 덕은동, 광명시 소하동 등 상기 산악지대가 한강강구 평야를 끼고 나팔모양으로 개구하는 야산지대에서도 볼 수 있다.[註1] 다만 청계천 북쪽의 사면일대 즉 동소문동, 성북동, 혜화동, 계동, 가회동, 궁정동 등의 지역에도 유적들이 있었을 것으로 믿어지나 후대의 주택지 조성과 사태 퇴적 등으로 모두 파손되거나 침몰되었다고 생각된다. 이것은 현재 종로일대의 경우 조선시대의 유물들이 지하 2m 이상 깊이의 퇴적사층에서 나타나고 있는 점으로 충분히 추측할 수 있는 것이며 조선시대 이후로는 형편없이 오염되었지만 그 이전의 청계천은 문자 그대로 북악에서 흘러내리는 청류이며 여기 북안의 남향 경사면은 선사시대 주민들에게는 둘도 없는 좋은 주거지였을 것이다. 신석기시대의 서울지역은 두만강하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