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9세기 후엽 일본이 경제, 정치 강국으로 등장하면서 이 지역 명칭의 이전 형식과 내용사이의 모순이 전면으로 부각되는 것이다. 이에따라 딜릭은 이지역의 ‘탈중심성’이 영속화될 것이라고 보았다. 흥미로운 것은 일본은 태평양권 구조안에서 이미 이 구역에 구미가 정해 놓은 규칙을 그대로 지키면서 2차태전으로 시작한 열강 패권다툼에서 급부상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일본은 구미 헤게모니로 부터 아시아 국민들의 해방을 부르짓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려는 것처럼 보였으나 방법은 역시 지역구조를 고스란히 둔채 자신들의 지배아래로 끌어들이는 식민주의였으며 이는 지역구조, 지역상의 대안을 만들어 내진 못했다고 본다.
“과거 얼마동안 공동체 건설의 다른 표현은 식민화”라는 한 필리핀 학자의 불만섞인 듯한 주장은 특히 일본의 이런 자세에 대한 예리한 지적이라 생각한다.
현재도 일본은 세계경제 강국임에도 불구, 헤게모니를 움켜쥐고 떵떵거리는 사회가 아닌 이에 끌려가는 사회이며 다만 이 지역내의 우위를 요구할 뿐이다. 문득 이런 얘기는 내게 어느 식자의 ‘현재 일본 문화는 액면가의 문화’라는 말을가 떠올리게 했다.
우위권 문제라면 중국의 등장, 한국의 통일에 대한 잠재력때문이라도 앞으로 이 지역 우위권조차도 불확실성을 낳게 되는 것이다.
<태평양식 발전노선?>
이글에서도 또한 새로와 보일지 모르는 태평양식 발전 노선에 대한 모순성을 드러낸다.
이 지역 주도권이 아시아에 옮아가는 현상이 역력한 만큼 구미 태평양보단 아시아 태평양권이라고 부르는 것이 현재로선 더 타탕하더라도 태평양이라는 틀속의 대안은 여전히 불분명하다. 그 예로서 ‘유교 문화권의 분투’를 들고 있는데 기존 자본주의적 구조에 동아시아성을 주장하는 이념외엔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한다. 딜릭은 또한 이러한 구조적 모순의 대안으로서 이슬람이라던가 기타 종교적 전통들의 역할로도 이는 물려받은 ‘근본적 모순’이기에 치유할 수 없다라는 우려를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