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다음으로 통일신라의 권력구조에서 주목되는 것으로 신형식은 `전제왕권의 유지를 위한 관부상호간의
견제와 균형`을 든다.
그는 특히 집사부의 중시를 1인으로 하여 귀족세력의 침투를 배제한 것처럼 신라의 14개의 중앙관부
에 있어서 총 300여 명의 관원 중에서 하급관리인 사가 200정도에 육박하는 것은 단순한 사무중점주의
가 아니라, 진골귀족의 세력을 견제하려는 의도로 간주할 수도 있다고 한다.
신형식의 이러한 `하부 관료제의 정비는 진골 위주의 장관 중심제를 견제, 통제하려는 왕권절대화의
수단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라는 주자에 대해 이기백은 신형식이 전제적인 정치제도를 생각하는 데
서 핵심이 되는, 정책의 결정권을 누가 쥐고 있었는가, 국왕의 정책결정에 견제세력이 있었는가 어떤가
하는데 대해서는 크게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신형식이 주장한 것은 하부관료가 진골위
주의 장관 중심제를 견제 통제하여 왕권절대화의 수단이 되었을 것이란 점뿐인데 그것도 `될 수도 있었
을 것이다.` 라고 하여 자신없는 표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기백은 귀족의 의사를 대변하여 왕권을 견제하던 화백회의와 그 의장인 상대등의
정치적 기능에 대한 분석은 신라 전제정치의 성립과정을 이해하는데 가장 긴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음으로 신형식은 신라의 권력구조에서 특기할 점으로 장, 차관의 복수제와 고위관직의 겸직제를 들
고 있다.
혹자는 복수제의 성격을 주요국사에 대한 귀족합의제라든가, 상호견제의 의미로 파악하지만, 신형식은
전행정부장관이 정치적 실권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복수제는 행정적 차원보다 정치적 의미
가 있는 것으로써, 직능의 분화와 권력의 견제 및 분석을 통한 전제왕권의 유지책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또한 겸직제에 대해서는 권력집중, 행정능률의 향상 및 재정문제의 타개책 또는 무열계의 권력장악수
단으로 창안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2, 3…
단으로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