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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들은 지방 정부를 기반으로 하여 만일 형세가 맞으면 중앙 정부에 진출하여 요직을 차지하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으면 지방으로 물러나 잠복해 있으면서 서서히 재기를 꾀한다. 중앙 정부는 이러한 귀족들의 동태를 잘 파악하지 못하면 정치를 원활히 수행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귀족은 점점 우쭐해져서 자신들의 가문은 천자보다도 낫다고 자만하거나 천자의 권위를 무시하는 일조차 적지 않았다. 이러한 귀족의 방자함을 좌시하지 않았던 인물이 隋나라의 文帝였다. 관리 유자격자를 확보하기 위해 과거제를 만들었던 것이다. 즉 해마다 중앙 정부가 전국에서 희망자를 모아 시험을 치른 후 여러 과목에 급제한 사람에게 각각 秀才, 明經, 進士 등의 직위를 주어 유자격자로 정하고 필요에 따라 이들의 각지의 관리로 임명하였다.
그 후 宋代가 되면 과목은 進士科 하나로 묶여졌지만 여전히 과거라는 말을 사용하여 청조 말년에 까지 이르렀다. 이처럼 과거라는 것은 원래 천자가 귀족과 맞서 싸우기 위한 무기로 창안된 것이지만 송대가 되어서는 이미 세상에는 천자에 맞설 만큼 강력한 귀족은 없어지고 과거제도의 전성시대에 들어선다.
송을 멸망시킨 몽고인의 元왕조는 처음에는 무력 일변도여서 학교나 과거에 조금도 흥미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러나 피정복민인 중국인들은 과거에 대한 향수를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그러는 사이 원조도 조금씩 중국화되어 가고 여기에 중국인의 간절한 희망이 부가되어 40여 년 중단되었던 과거가 소규모이지만 부활되어 원이 멸망되기 직전까지 계속되었다.
한편 明太祖는 학교제와 과거제를 병용하는 정책을 입안했다. 전국에 학교를 세우고 교관을 임명하여 여기서 충분히 교육시킨 후, 학생들 중에서 우수한 사람을 과거 시험에 의해 발\탹한다는 제도이다. 그렇지만 불행히도 이 제도는 시간이 흐르면서 그 본래의 정…
한편 明太祖는 학교제와 과거제를 병용하는 정책을 입안했다. 전국에 학교를 세우고 교관을 임명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