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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점을 생각하여 1892년 윌리암 러브(William T. Love)라는 사업가가 운하를 건설하여 선박을 운항하고 발전소를 세우는 계획을 추진 하였다. 당시 장거리 송전이 불가능하였기 때문에 발전소를 세우면 많은 공장을 유치할수 있고 20만 내지는 100만 인구의 도시가 건설될 것으로 예상하여 주정부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미국의 경제불황으로 은행이 파산하고 미회사가 재정적으로 어려웠다. 게다가 교류전류가 발명됨으로써 장거리 송전이 가능해졌다. 때문에 러브는 길이 1마일, 너비 15야드, 깊이 10-40 피트의 러브 커넬(Love Canal)이라는 사업을 1910년에 중단했다.
그 후 1940년 Hook Chemical이라는 화학회사에서 이를 인수하여 공장에서 버리는 화학물질을 55갤런들이 철제 드럼통에 넣어 이운하에 매립한 후 1953년 이 회사는 러브 커넬의 주변땅을 시교육위원회에 기증하였다.
이때 매립된 폐기물은 액체, 고체 및 각종 용매로서 염소 400톤, Chlorobenzene 200톤, Thichlorophenol 200톤, Hexachlorocyclohexane 6,900톤, Dedecylmeracap-
tan 2,400톤 등이었다.
여기에 학교, 주택지를 지었다. 학교가 세워진 이후 학생들은 운동자에서 이상한 연기가 나오고, 여기에 돌을 던지면 돌이 연기를 내면서 부식하는것을 보았다.
환경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주민과 학교는 무관심하였다.
1970년대 건물 지하실에서 이상한 물질이 스며나오고 하수구가 검은 액체에 부식하는 일이 있었으나 시당국은 무관심했다. 이 지역에 사는 주민들은 피부병이나 두통이 자주 발병하고 유산율이 높았다. 1976년 홍수가 있은후 가로수와 정원의 꽃이 죽고 연못에서는 유해한 화학물질이 검출되고 토양에서 유독물질을 포함한 물이 스며나오고 주민들이 신체의 통증을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