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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관계정상화 협상과정, 1951-1963
한일간의 국교정상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대외안보환경이었다고볼 수 있다. 특히 동아시아지역에서의 냉전확산과 이로 인한 긴장이 고조는 미국으로 하여금 한일간의 화해를 강력히 종용하도록 유도하였다. 미국의 이같은 노력은 1965년 조약의 실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같은 주장은 비록 적지않은 연구들에서 언급되었지만 이를 주제로 한 심도깊은 여구는 진행되지 않았다. 한일 국교정상화과정에서 미국의 역할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1965년 이전의 관계정상화 협상과정을 간략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65년 6월 22일에 서명된 한일 기본조약은 1945년 일본의 식민지 통치가 끝난 이후 처음으로 양국간의 국교를 정상화한 사건이었다. 이 조약의 기본조항들은 다음과 같은 내용들을 포함한다. 식빈통치기간중 체결되 제조약의 폐지, 대한민국 정부 인정, 2억불의 정부차관과 3억불의 상업차관, 3억불의 원조, 재산권 청구 등을 포함한 8억4천5백만불의 차관제공 등이 골자였다. 그 밖에도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 문화재들의 반납, 교포의 지위문제, 영해획정 등에 대한 기술적인 합의도 있었다. 조약원문에 대해서는 『대한민국 외교연표: 1965 부주요문헌』(서울: 외무부, 1965), pp.321-323. 조약 내용에 대한 보다 자세한 분석을 위해서는 Kim, The Korea-Japan Treaty Crisis, chap. 2.
한일간의 국교정상화회담은 1051년 10월에 시작되었지만 의제를 둘러싼 의견불일치로 인해 일정자체가 갑작스럽게 연기되었다. 1945년 일본의 항복이후 한국정부가 샌프란시스토 평화회담에 참가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미국은 한국이 이 조역의 서명당사국이 아니란 이유로 회담참가를 통해 일본으로부터 보상을 이끌어네려는 한국정부의 참가의도를 봉쇄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