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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간의 배타의 문제에 오면, 우리는 대체적으로 불교도들보다는 기독교들에게서 매우 강한 배타의식을 직면하게 된다. 나의 긍정이 타의 부정위에서만 가능하다고 하는 생각이 그들의 전도주의(evangelism)의 본질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기독교의 교리의 진정한 본질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유대민족의 선민의식(chosen people)의 연장태일 뿐이요, 유대민족의 선민의식이란 팔레스타인이나 이방민족과의 끊임없는 투쟁속에서 살아야만 했던 유랑하는 유목민족의 역사적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후천적, 문화적 산물인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파기되어야 할 구약, 즉 옛 약속의 세계에 속하는 것이다. 그것은 신약, 즉 새로운 약속이 아닌 것이다. 새로운 약속이란 나만 잘났다고 하는 선민의식의 파기에서 성립하는 보편주의적 사랑인 것이다. 신약의 약속은 유대인만을 위한 사도가 아닌 이방인을 위한 사도(apostle for gentiles), 바울을 통하여 만방에 전파된 것이다.
나는 이 나의 금강경 강해를 불교도가 듣기 보다는,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난 편견없는 많은 젊은이들이 들어주기를 바란다. 종교간의 갈등의 해소라는, 21세기 문명사적 과제상황의 근원적인 해결의 열쇠가 이 금강경 속에 다소곳이 놓여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개인적으로 만난 인도의 한 현자의 말을 나는 생각한다. `종교란 본시 사람의 수만큼 각기 다를 종교가 필요한 것이지요. 종교에 대해 일원적인 논의를 한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 훌륭한 종교의 교사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제각기 다른 종교의 형태를 발견해주는 것입니다. 마치 옷이 사람마다 그 취향과 색감과 크기가 모두 다르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