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1. 사람은 언제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공자는 일찌기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말을 했다. 그렇다면 그 `도`라는 것은 무엇인가? 그 `도`가 바로 `그` 도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확신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무엇때문에 기다릴 필요가 있는가? 그날이 지금 당장 왔다고 치지 말란 법이 어디 있는가?`(미셸 투르니에, [방드르디 혹은 태평양의 끝], 김화영 역, 중앙일보사, 326)
2. 인간의 행위를 역사의 관점에서 보는 것은 항상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마치 그 행위가 역사의 텔로스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으로 보여진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나 그 역사 주변에도 삶은 존재하며, 아무도 그 삶을 부정할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 따라서 다시쓰기(reecriture)라는 특성을 강조해서 [방드르니 혹은 태평양의 끝]과 같은 작품을 포스트모더니즘으로 분류한다는 것은 우스꽝스런 일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언제나 이미 다시쓰기였다. 사가들에 의해 어떻게 분류되건 간에, 예컨대 엘리어트의 장시 [황무지]가 그러하듯이, 진공에서 태어난 것이란 없는 까닭이다. 물론 패로디와 그 효과를 지적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을 이 시대만의 특징이라고 과장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욕망의 일그러진 누전일 뿐이다. 저작권의 소유자로서의 저자가 강조되기 이전 사회에서 패로디 혹은 베끼기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었으며 경솔하게 과장되지도 않았다. 자신의 작품이 패로디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은 현대인의 과잉된 자의식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