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자연`에 관한 이오니아인들의 학문은 현실을 합리적으로 구성하려고 한, 세계에 대한 최초의 체계들이었다. 그런데 이 사유가 진정으로 철학적이고 전적으로 합리적이었다면 왜 소크라테스를 실망시켰는가? 아마도 `독단성`과 `무용성`[주1]을 그 두가지 이유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1:48) 이러한 자연의 고찰에 대한 반발은 <자연 철학자들이 제시하는 세계가 상식과는 먼 거리에 있고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데 대한 상식의 반항>(3:79)이었다. 전쟁과 역병의 참사를 겪는 5세기의 아테나이는 최소한의 여가와 물질적 안락함이 보장된 편안한 곳은 이미 아니었다. <인간의 삶과 행위의 문제가 점점 더 비집고 나오>(3:81)고 <정치 생활의 기초가 되는 원리와 그 성공을 보장해 줄 수단에 관하여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어하는 야심>(ibid.)이 팽배한 사회·정치적 배경속에서, 자연학의 파탄은 퓌지스의 탐구로부터 반발을 가져온 것이다. 자연 철학자들은 보통 사람에게 파르메니데스와 원자론자들 중의 선택을 제의했는데, 이는 모두 상식적 현실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보통 사람에게 있어서는 자연 철학자들이 눈에 띄게 실패한 것 같이 보였음에 틀림없다.>(3:82)
다른 각도에서 <매우 재빠르게 과학의 많은 기본 원리들을 발명한 그리스인들이 적용의 면에 있어서 더 나아가지 않은 것은 왜인가>(2:49) 라는 물음과 관련하여 살필 수도 있는데, 대개의 대답은 오해를 담고 있다.[주2] 실상 <5세기의 새로운 민주주의의 시민들에게 과학은 정치학보다 훨씬 덜 중요한 것으로 보였다. 행동력과 지적 호기심을 가진 아테나이人은 세계를 설명하고 변화시키는 데에 정말로 관심이 있었다. 그러나 설명은 철학의 일이었고, 변화는 정치학의 일이었다. 그래서 추상적 원리들은, 그것들이 도대체 `적용`되었다 해도, 과학의 발전이 아니라 폴리스에서의 성공적인 삶의 技術에 적용되었던 것이다.>(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