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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이전부터 스베아란드 지방의 멜라랜(M aren) 호수 주변에 살고 있던 스베아족은 촌락을 형성하고 집단 생할을 하였으며, 점차로 다른 부족을 흡수·지배하게 되었으니 그들의 해상 활동은 바이킹 시대에 절정을 이루었다. 이 때 바이킹은 콘스탄티노플에 이르는 해로를 지배하면서 유럽과 동방 사이에서 무역을 행하였다. 그 당시 덴마크 영토였던 스웨덴 남부 지방에서 살고 있던 바이킹족은 서부 유럽과 영국의 도서 지방 침입에도 참여하였다.
바이킹족을 해적으로만 보는 경향이 지배적이나 그들의 해상 약탈은 부분적인 현상이었으며, 실제는 당시 극도로 한랭한 기후 때문에 물자의 교류와 새로운 정착지를 찾아서 남쪽으로 민족 이동을 시도한 것이라고 평가하는 역사 학자도 있다. 볼가 강이나 드네프르 강 유역에 스웨덴계 바이킹의 대규모적인 식민지가 건설된 것은 그것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증거이다. 그 가운데에서도 노브고로트와 키예프는 역사적으로 유명하며, 콘스탄티노플까지 모피를 가지고 아라비아인들과 교역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 가장 세력이 컸던 종족은 중부 지방의 스베아족과 남부 지방의 예타족이었으나, 600년께 스베아족이 예타족을 정복하여 부족 국가를 이루고 수도를 감믈라 웁살라로 정했다. 830년에는 안스가르라고 불리는 프랑스 수도사가 최초로 기독교 선교사로 스웨덴에 도착하였으며, 영국과 독일 북부로부터 온 카톨릭 선교사들은 많은 원주민을 개종시켜 성당을 세우고 교구를 설치하였다.
바이킹의 활동은 11세기에 종료되었으며 이 시기에 전국적인 통일의 기운이 일기 시작하였다. 그 당시 여러 지방에서는 각기 별개의 지방 법률을 보유하였으며, 왕족들은 권력 투쟁에 열중하고 있었다. 정치가이며 새 왕조를 연 비르예르 얄(Birger Jarl)은 13세기 중엽에 법률을 통일하는 기초 작업을 끝내고 스톡홀름을 건설하여 수도로 정했다. 전국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법률은 1350년에야 채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