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왕위계승전에는 당시 재위하고 있는 왕과 왕위계승을 하려는 자, 그리고 이들 왕과 왕위에 도전하려는 자를 지지하는 셰력집단이 존재하였다. 혜종이 재위하고 있을 때 이에 도전한 세력은 요·소의 왕자 및 그와 결탁한 왕식렴 세력, 그리고 광주원군과 그를 왕으로 삼으려는 왕규세력이 있었으며 혜종은 박술희 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이에 주목해야 할 것은 왕이나 왕자를 지원하는 세력집단이다. 따라서 여기서 생각할 정치세력집단은 왕과 그의 지지세력, 왕위에 도전하는 자와 그의 지지세력의 존재형태가 될 것이다.
「고려사」를 보면 혜종이 소에게 장공주를 혼인시켜 소의 세력을 강하게 해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왕규가 ‘기당’을 보내 혜종을 죽이려 한 것과 또 왕규와 함께 죽은 300 여 인이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때 이 300 여 인은 왕규의 친척으로만 이루어진게 아니라 아마도 그 밖에 정치적 이해관계에 얽힌 사람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이에 혜종을 지지한 세력은 박술희였고, 광주원군은 왕규가, 요·소는 왕식렴이 도왔음을 알 수 있다.
사료의 기록대로라면 박술희는 혜성군인으로서 혜성군의 호족출신인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혜종의 후견인이 된 이유가 단순히 지방호족 출신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궁예 뿐 아니라 태조 아래에서 군공을 세울 수 있었던 개인의 뛰어난 군사적 실력 때문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음 왕규와 광주원군에 대해서 살펴보자. 이 경우에는 광주원군이 왕이 되려했다기보다는 왕규가 정치적 이유로 광주원군을 왕으로 삼으려 했었던 것 같다. 왕규는 광주원군의 외조였고, 혜종의 장인도 됐다. 이에 왕의 장인이면서 자기의 외손을 왕으로 삼으려 한 왕규의 예로 사위보다는 외손이 더 가까운 관계였음을 알 수 있다.
다음 요·소와 왕식렴의 관계를 생각할 수 있다. 왕식렴은 요·소의 종숙이 된다. 또한 혜종과 광주원군과도 같은 관계에 있는 셈이었다. 그러면서도 요·소를 지지한 것이 주목된다.
참고문헌
1. 이종욱,<고려초 945년대의 왕위계승전과 그 정치적 성격> 《고려광종연구》
일조각, 1981
2. 황운용,《고려벌족연구》, 1989
3. 황선영,《고려초기 왕권연구》, 동아대학교출판부, 1988
4. 강희웅, <고려혜종기 왕위계승란의 신해석> 《한국학보》 7,1977, 여름
5. 엄성용,<고려초기 왕권과 지방호족의 신분변화> - ‘호족련합정권’설에 대한
검토 - 《고려사의 제문제》,1986
6. 박창희,<고려초기 ‘호족련합정권’설에 대한 검토> -‘귀부’호족의 정치적 성
격을 중심으로 - 《한국사의 시각》, 영신문화사, 1984
7. 하현강, 《한국중세사론》, 1989
8. 이병도, 《고려시대의 연구》, 아세아문화사